항목 ID | GC0190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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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淨土寺址弘法國師塔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Monk Hongbeob in Jeongto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서동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보물 제35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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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보물 재지정 |
성격 | 금석각류|탑비 |
건립시기/일시 | 1017년 |
관련인물 | 홍법국사 |
재질 | 화강암 |
높이 | 375㎝ |
너비 | 104㎝ |
소재지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고려 전기 홍법국사 탑비.
[개설]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선덕왕대에 태어나 12세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당나라를 다녀온 뒤 선(禪)을 크게 일으켜 국사 칭호를 받았다.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경위]
정토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 목종이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내려주러 탑비를 건립하였다. 비문의 찬자는 손몽주(孫夢周)이고, 필자는 불명이나 비교적 정연한 구체 해서이다.
[위치]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는 본래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었는데, 1915년 서울 경복궁으로 옮겼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다시 옮겨졌다.
[형태]
현재의 지대석은 새로 만든 것이며, 원래의 것은 개천산 옥녀봉 중턱의 원래 위치에 매몰되어 있다.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의 비좌에는 구름 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각 면에 안상(眼象)을 음각하였다. 귀부형의 받침돌은 사실적으로 조각했고 등에는 귀갑을 새겼으며 귀두는 용머리 모양이다. 반쯤 벌린 입으로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거북등 위에 비공 받침을 만들고 주위에 연꽃을 조각했다.
비신의 높이는 229㎝이며 폭은 104㎝이고 두께는 23㎝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비문은 구양순체 해서이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렵다. 이수의 반룡은 구체적으로 조각하였고, 앞면 중앙에 ‘실상지탑(實相之塔)’이라고 해서로 제액했다. 귀부는 운각반중(雲刻盤中)에 조출되었고, 각 면에 안상(眼象)을 각출(刻出)하였으며, 귀두는 용두화(龍頭化)한 함주 개구형(含珠開口形)이다. 이수의 중앙에는 전액으로 해서를 새겨넣었고, 전액을 대칭으로 반룡(蟠龍)된 힘찬 조형은 다른 비에 비하여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금석문]
비신천계(碑身天界)에는 비액을 좌횡에 자경 8㎝로 ‘개천산정토사고국사홍법대선지비(開天山淨土寺故國師弘法大禪之碑)’라 전서하였다. 비문 면에는 종횡 세선으로 방형행간(方形行間)을 새겼고, 비문은 자경 2.2㎝의 구체(歐體) 해서이다. 이면에는 입실제자(入室弟子) 및 재가제자(在家弟子) 등의 명목(名目)을 열거한 자경 3㎝의 행서(行書) 음기(陰記)가 있으나 풍화, 마손되어 거의 판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비문은 “대송고려국중원부개천산정토사원광편소홍법대선사……(大宋高麗國中原府開天山淨土寺圓光遍炤弘法大禪師……)”로 시작하여 “세차정사구월일입(歲次丁巳九月日立)”로 끝을 맺었다.
[의의와 평가]
비는 거북 받침돌 위에 비의 몸체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어 있는데,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이다. 용의 표현은 다른 탑비의 받침돌에 비하여 구체적이고 힘차다. 또한 머릿돌에도 용틀임 조각을 하였는데 그 수법이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