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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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北靑年聯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지역 청년 단체들의 연합체.
[개설]
경북청년연맹(慶北靑年聯盟)은 1928년 1월 열린 경북기자대회를 활용하여 대구와 경상북도 각 부·군 단위의 청년 동맹들이 연합하여 중앙 집권적 도 단위 단체로 결성한 청년단체였다. 경북청년연맹은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 청년운동의 지도 기관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였다.
[설립 목적]
경북청년연맹은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 청년운동의 지도 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각 군의 청년 동맹에서 도 단위 청년 연맹, 조선청년총동맹으로 이어지는 중앙 집권적 전국 청년운동 조직 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28년 1월 결성된 경북청년연맹은 1920년대 후반 사회주의 세력의 운동방침 전환에 따라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과 혁명적 대중운동의 조직으로 흡수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북청년연맹은 1928년 1월 7일에서 1월 8일까지 이틀간 경상북도 김천에서 열린 경북기자대회를 활용하여 조직되었다. 경북기자대회 개최 후 곧이어 열린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에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 청년운동의 발전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결성되었다. 경북청년연맹은 1924년 서울에서 사회주의 계열 청년 단체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청년 단체까지 동참하여 결성된 조선청년총동맹의 강령과 규약을 그대로 채택하였다.
경북청년연맹의 집행위원장은 홍보용, 집행위원은 황태성, 김리용, 박창호, 황윤경, 추성해 등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통합 조선공산당[ML]계로서 고려공청경북위원회[고려공청경북도위원회]와 각 출신 지역의 사회주의 조직원이자 사회운동의 주요인물이었다.
경북청년연맹의 결성은 조선청년총동맹이 주요 방침으로 설정하였던 조선청년총동맹, 경상북도 연맹, 군[부] 청년 동맹-지부[또는 지회]라는 전국 단위 청년운동의 중앙 집권 체계 완성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경북청년연맹의 결성은 조선청년총동맹의 신운동방침, 곧 방향전환론에 따른 것이었다. 즉 ‘전 민족적 협동전선에서의 선두대로서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방향전환론이었다. 무산계급 청년만을 본위로 한 청년운동을 민족주의계 청년을 비롯한 조선 전체의 청년운동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었다. 1928년 12월 테제[코민테른 12월 테제] 발표 이후 조선 사회운동의 운동방침 전환에 따라 경북청년연맹은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과 혁명적 대중운동에 흡수되어 가면서 활동성이 약화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북청년연맹은 조선청년총동맹의 조직 방침으로 설정되었던 전국적인 체계적 조직 완성에 기여하였으며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 청년운동의 지도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