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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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山 烽燧 |
영어공식명칭 | Seongsan Signal-fir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산46-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영재 |
훼손 시기/일시 | 1895년 - 성산 봉수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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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20년 8월 31일~9월 8일 - 성산 봉수 금오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 시굴 조사 |
현 소재지 | 성산 봉수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산46-2 |
원소재지 | 성산 봉수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산46-2 |
성격 | 봉수대 |
양식 | 내지 봉수 |
크기(높이,길이,둘레) | 103.3m[둘레] |
면적 | 792㎡[추정치] |
관리자 | 대구광역시 수성구청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고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개설]
성산 봉수(城山烽燧)는 내지(內地) 봉수(烽燧)[조선시대 국경 지역 해안가에 설치한 연변(沿邊) 봉수(烽燧)와 한양의 경봉수(京烽燧)를 연결하기 위하여 내륙에 설치한 봉수]에 해당하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병고조(兵考條)에 의하면 제2거 직봉(直烽)[동래-한양 간]에 포함된 간봉(間烽)[5개의 직봉 노선 사이에 연락의 단절을 우려하여 각 노선마다 보조로 설치한 봉수]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성산 봉수는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부터 건립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895년(고종 32년) 봉수제도가 철폐되기까지 500여 년간 대응 봉수인 법이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경상북도 경산시 시산 봉수로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산 봉수는 2020년 금오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 시굴 조사를 진행하여 대략적인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단은 봉수대의 타원형 방호벽과 숙화시설, 석렬, 수혈 등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건립 경위]
성산 봉수는 고려 말~조선 초에 왜구의 침입이 해안 지대를 넘어 내륙으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이 초래되자 감시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건립되었다고 여겨진다.
[위치]
성산 봉수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산46-2번지에 있는 고산[95.3m]의 남사면 끝자락에 위치하며 성동산성 내에 있다.
[형태]
대략적 윤곽만이 확인되었을 뿐이지만 방호벽을 갖춘 초대형 내지 봉수이다. 방호벽은 타원형이며, 둘레는 기저부 기준으로 103.3m, 상부 기준으로는 98.2m이다.
[현황]
성산 봉수대는 2020년 정밀 시굴 조사가 종료된 이후에 복토가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성산 봉수대는 조선 초부터 존재하였던 봉수이다. 규모 면에서 대구 법이산 봉수와 더불어 초대형 내지 봉수로 분류할 수 있는 데에서 군사적 중요도를 가늠하여 볼 수 있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