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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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遺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병섭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된 철기시대 유적.
[개설]
한국고고학에서는 초기 철기시대라고 지칭한다면 청동기시대에 이어서 새로이 유입된 철기문화가 확산된 시기를 말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철기의 유입과 이미 정착되어 있던 발달된 청동기문화와 시기적으로 뚜렷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잘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청동기문화를 포함하여 기원전 300년부터 서력기원 전후까지를 초기 철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대구 지역의 철기 유적]
우리나라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기원전 300년부터 보고 있지만, 대구 지역에서 실제로 철기가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은 기원전 2세기부터이다. 철기 등장 이전 대구 지역의 철기시대 유적은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연암산 유적, 침산유적, 괴전동 유적, 월성동 선사유적 등의 구릉지 생활 유적이 있고, 각산동 912-6번지 유적, 서변동 670번지 유적, 상동 76번지 유적, 국우동 유적 등 발굴 조사를 통하여 평지에서 확인된 생활 유적이 있다. 생활 유적에서는 원형점토띠토기[圓形粘土帶土器]와 삼각형점토띠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굽다리접시[豆形土器], 쇠뿔손잡이[牛角形把手], 홈자귀[有構石斧], 돌끌[石鑿], 돌화살촉[石鏃] 등이 지표에서 수습되거나 출토되었다. 그리고 무덤 유적으로서 검은간토기 긴목항아리[黑陶長頸壺]가 출토된 월성동 1275번지 유적, 검은간토기 긴목항아리와 점토띠토기가 같이 출토된 팔달동 유적이 있다. 이렇게 철기가 공반되지 않는 유적 중에서 삼각형점토띠토기가 같이 출토되지 않고 원형점토띠토기가 주로 확인된 유적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적으로 보기도 한다.
철기가 공반되는 유적은 주로 무덤 유적에서 확인된다. 월성동 772-2번지 유적의 널무덤[木棺墓]에서 삼각형점토띠토기, 굽다리접시, 청동칼자루끝장식[靑銅劍把頭飾]과 함께 쇠검[鐵劍]이 출토되었고, 팔달동 유적의 널무덤과 독널무덤[甕棺墓], 학정동 유적의 널무덤에서는 주머니호, 검은간토기 긴목항아리, 조합쇠뿔 손잡이항아리[組合牛角形把手附壺], 굽다리접시, 세형동검, 동투겁창[銅鉾], 칼자루끝장식과 함께 쇠투겁창[鐵鉾], 쇠도끼[鐵斧], 쇠끌, 대팻날쇠도끼[板狀鐵斧]가 출토되었다. 신천동 589-205 유적의 널무덤에서는 동투겁창 2점, 동꺾창[銅戈], 장대투겁[竿頭鈴] 1쌍, 동방울[銅鐸] 2점이 출토되었는데, 동꺾창과 장대투겁의 표면에 쇠녹이 묻어 있어 철기가 함께 공반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철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기 생활 유적으로서는 신천동 621-1번지 유적이 있는데, 삼각형점토띠토기, 굽다리접시, 쇠뿔손잡이항아리가 출토되었다.
대구 지역 철기시대 마을유적은 이전 청동기시대와 같이 대규모 마을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하천 주변 독립 구릉과 충적지에 골고루 마을이 조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석기 제작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연암산 유적의 경우 중심 취락으로서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철기시대 무덤의 형태는 돌무지 널무덤[積石木棺墓], 널무덤, 독널무덤이며, 널무덤에는 통나무널이 사용된 것도 있다. 무덤 유적 중 가장 주목되는 유적은 팔달동 유적이다. 무덤에 부장된 유물을 통하여 기원전 1세기 전반부터 대구 지역에 유력자가 출현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고, 대구 지역 복합사회의 형성 및 소국(小國) 출현, 발전 양상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