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86 |
---|---|
한자 | 嘉善大夫 金岳素 不忘碑 |
영어공식명칭 | Gaseondaebu Gimakso Bulmangbi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남로 5[이곡동 118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00년 - 김악소 출생 |
---|---|
건립 시기/일시 | 1760년 -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 건립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81년 - 김악소 사망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818년 -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 중건 |
이전 시기/일시 | 1994년 11월 -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 이전 |
현 소재지 | 와룡공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남로 5[이곡동 1189] |
원소재지 |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 -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산10-2 |
성격 | 불망비 |
양식 | 대석|비신 |
관련 인물 | 김악소 |
재질 | 화강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04㎝[비신 높이]|48㎝[비신 너비]|12㎝[비신 두께]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가선대부 김악소의 불망비.
[개설]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嘉善大夫 金岳素 不忘碑)는 조선 후기에 기금을 출연하여 마을 앞 금호강의 제방을 축조하게 한 가선대부 김악소[1700~1781]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김악소의 자(字)는 화옥(華玉)이고 가선대부에 증직되었다. 김악소가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기금으로 내었고 마을 사람들은 김악소의 기금을 바탕으로 해마다 범람하는 금호강 제방 500m를 축조하였다. 김악소의 조부 김응수(金應守)는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록되었고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증직되었으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정착한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입향조이다.
[건립 경위]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는 김악소가 기금을 출연하여 금호강에 제방을 설치하게 한 공덕을 기리고자 1760년에 마을 주민들이 세웠다. 그러다가 비석이 훼손되어 1818년(순조 10)에 같은 크기로 다시 세웠다.
[위치]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는 기록으로는 신당동 산10-2에 서 있었다고 하며, 도시계획으로 말미암아 1994년 11월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남로 5[이곡동 1189]에 있는 와룡공원으로 옮겼다.
[형태]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는 화강석으로 만든 대석(臺石)과 비신(碑身)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신은 높이 104㎝, 너비 48㎝, 두께 12㎝의 규모이다. 대석은 비석을 옮길 때 다시 만든 것인데, 높이 77㎝, 너비 57㎝, 두께 30㎝이다.
[금석문]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에는 한가운데에 ‘가선대부김악소불망비(嘉善大夫金岳素不忘碑)’라는 비제가 적혀 있고, 비를 세운 취지를 한자로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물을 출연하여 폐단을 방지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었도다. 돌에 새기노니, 볼지어다! 후인들이여[出財防弊, 惠我一○ 刻石以記 觀哉後人].”
[현황]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는 와룡공원에 신당동 유래비와 함께 서 있다.
[의의와 평가]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는 주민들이 세운 불망비로는 드문 것이어서 보존할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