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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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三德洞 遺蹟 |
이칭/별칭 | 대구 삼덕동 188-1번지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7[삼덕동 188-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민선례 |
시기/시대 | 청동기시대 - 대구 삼덕동 유적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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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5월 18일~7월 1일 - 대구 삼덕동 유적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소재지 | 대구 삼덕동 유적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7[삼덕동2가 188-1]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성격 | 생활 유적|고분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돌널무덤 유적.
[개설]
대구 삼덕동 유적(大邱三德洞遺籍)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주거지]와 돌널무덤[석관묘] 유적이다. ‘대구 삼덕동 188-1번지 유적’이라고도 부른다. 대구 삼덕동 유적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삼덕동 고인돌이 있으며,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대봉동 고인돌Ⅰ이 있고, 170m 정도 떨어져 대봉동 마을 유적이 있다. 대구 삼덕동 유적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부속중·고등학교 배구부 숙소로 사용되다가 2002년부터 주차장 부지로 이용되었다.
[위치]
대구 삼덕동 유적은 삼덕동2가 188-1번지에 있다. 반월당네거리에서 달구벌대로를 따라 동으로 870m 정도 가다가 동덕로를 따라 북으로 120m 정도 가면 경북대학교의 치의학전문대학원 후문이 나오고, 후문의 남쪽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삼덕동 유적은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복지후생동 증축 부지에 해당되며, 2009년 5월 18일부터 2009년 7월 1일까지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구덩이[수혈(竪穴)] 3기, 부석 1기, 돌널무덤 3기와 조선시대 이후 수혈 2기, 우물 1기, 목곽시설 1기가 조사되었다.
[형태]
대구 삼덕동 유적은 암갈색사질점토층이 퇴적된 북서쪽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가 확인되며, 역석층이 형성된 남동쪽에 청동기시대 돌널무덤과 부석이 확인되었다. 1호 주거지의 크기는 현길이 534㎝, 현너비 414㎝, 깊이 18㎝이며,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위석식 노지 1기와 무시설식 노지 2기가 조사되었다. 2호 주거지의 크기는 길이 376㎝, 현너비 352㎝, 깊이 20㎝이며, 평면 형태는 원형이다. 3호 주거지의 크기는 길이 420㎝, 너비 410㎝, 깊이 34㎝이며,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4호 주거지의 크기는 길이 446㎝, 너비 420㎝, 깊이 2㎝이며,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5호 주거지의 크기는 길이 492㎝, 너비 380㎝, 깊이 10㎝이며,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다.
1호 돌널무덤의 돌널 크기는 길이 165㎝, 너비 41㎝, 깊이 24㎝이며, 2호 돌널무덤의 돌널 크기는 길이 172㎝, 너비 38㎝, 깊이 35㎝이다. 1호와 2호 돌널무덤의 양장벽은 천석을 여러 단 쌓고, 단벽은 판석 1매를 세워 돌널을 만들었다. 3호 돌널무덤의 돌널 크기는 길이 150㎝, 너비 38㎝, 깊이 26㎝이며, 네 벽을 모두 천석을 쌓아 돌널을 만들었다. 2호와 3호 돌널무덤 바닥 전체에 돌을 깔아 바닥 시설을 만들었다.
[출토 유물]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는 절상돌대문토기(節狀突帶文土器), 구순각목문토기(口脣刻目文土器), 무문토기 발(無文土器 鉢), 공열문토기(孔列文土器),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 원판형토제품(圓板形土製品), 토제어망추(土製漁網錘), 석촉(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에서는 붉은색간토기와 무문토기 발, 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아 집자리는 청동기시대 초기, 돌널무덤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대구 삼덕동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완료된 후 같은 자리에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복지후생동 건물이 세워졌다.
[의의와 평가]
대구 삼덕동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돌널무덤은 청동기시대 조기 또는 전기의 이른 시기부터 중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대봉동 유적과 함께 신천 유역의 청동기시대 사회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