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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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懇切- 祈禱- 八公山 - |
영어공식명칭 | Vally in palgongsan mountain that he found for eagerly prayi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철호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염원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기도처에 대한 이야기.
[명산의 요소를 갖춘 팔공산 지형]
팔공산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칠곡군 동명면, 군위군 부계면, 영천시 신녕면, 경산시 와촌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태백산맥의 보현산(普賢山)에서 서남쪽으로 연결된 산으로 산맥이 남동쪽의 초례봉(醮禮峰)[648m]에서 시작하여 환성산(環城山)[811m], 인봉(印峰)[887m], 팔공산을 거쳐 북서부의 가산(架山)[902m]에 이른다. 인봉에서 가산까지는 팔공산맥의 주형으로 길이가 약 20㎞이다. 팔공산의 형세는 해발 1,193m의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봉(東峰)과 서봉(西峰)이 동과 서로 펼쳐져 있는 모습인데, 팔공산의 주봉과 주능선이 동구의 북쪽 경계와 맞닿아 있다. 지질적으로는 경상계 누층군에 화강암이 관입하여 돔을 이룬 뒤에 침식 작용으로 상부의 퇴적암이 제거된 형태이다. 이로 인해 그 밑 화강암이 노출되었고, 이는 외관상 능선 여러 곳에 기암괴석이 군을 이루게 하였다. 이러한 팔공산의 지형적 특성과 지리적 입지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민족의 역사에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잡게 했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고대, 국가 제사가 이루어진 곳 팔공산]
팔공산은 사람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신앙적으로 중요한 산이자 기도처로 중시되어 왔다. 통일신라는 오악(五嶽)이라 하여 동악으로는 토함산(吐含山), 서악으로는 계룡산(鷄龍山), 남악으로는 지리산(地理山), 북악으로는 태백산(太伯山)과 함께 부악(父嶽)[팔공산]을 중악으로 꼽았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산악숭배 사상 일환으로 산악의 비중도에 따라 국가가 제사를 지냈는데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가 있었다. 중악이었던 팔공산에서는 중사를 지내고 나라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팔공산을 공산(公山)과 중악(中岳)이라 지칭하는 기록이 등장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공산(公山)은 팔공산(八公山)이라 일컫는데 해안현(解顔縣)·대구부(大邱府)의 북쪽에서 북쪽으로 17리(里)[6.7㎞] 신라 때 부악(父岳)이라 일컫고 중악(中岳)에 비겨 중사(中祀)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도 팔공산 비로봉 주변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신라시대에 중사를 지내던 곳이 맞는지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더 진행되어야 하지만, 그만큼 팔공산은 신라시대부터 개인뿐 아니라 국가가 주관한 제사를 지낼 만큼 팔공산은 ‘영험’하다고 인식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 건립이 가장 융성했던 팔공산]
사찰과 암자 사찰(寺刹)은 승려가 불상을 모셔 놓고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펴는 곳으로, 팔공산에는 유래가 깊고 가치가 높은 여러 사찰들이 있다. 특히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가 대표적이다. 493년(소지왕 15)에 극달(極達)이 창건했다는 연기설화가 전하는 동화사(桐華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로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하고 있다. 804년(애장왕 5)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한 파계사(把溪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며 동구 중대동에 위치하고 있다. 선덕여왕 때 창건설이 있는 부인사(符印寺)는 파계사와 마찬가지로 동화사의 말사이며 동구 신무동에 위치하고 있다. 3곳 사찰은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화사는 많은 산내 암자를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이고 파계사는 조선시대까지 대표적인 왕실의 원찰이었으며,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의 봉안처이다. 이밖에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북지장사(北地藏寺), 동구 도동에 위치한 관음사(觀音寺), 동구 능성동에 위치한 관암사(冠巖寺)가 있다. 북지장사와 관음사는 각기 485년(소지왕 7)과 670년(문무왕 10)에 창건되었다는 연기설화가 전하는 유래가 깊은 사찰이고 관암사는 갓바위의 약사여래불에 가는 길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던 사찰이다. 암자(庵子)는 큰 사찰에 소속된 작은 사찰을 뜻하는데 팔공산에는 사찰에 소속된 여러 암자가 있다. 동화사의 소속 암자로는 염불암(念佛庵), 양진암(養眞庵), 내원암(內院庵), 부도암(桴屠庵), 비로암(毘盧庵), 약수암(藥水庵)이 있으며 모두 동화사 주변으로 동구 도학동 안에 있다. 이밖에 교구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사찰과 암자가 팔공산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곳곳이 기도처인 팔공산]
팔공산은 태백산맥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고 대구분지의 북쪽을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는 형세이다. 지질적으로는 화강암이 노출되어 있어 외관상 기암괴석이 여러 곳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팔공산의 형세와 외관상 드러나는 지질적인 특징은 무속신앙에서 선호하는 기도 장소의 조건을 만족시켜 준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팔공산은 신라에 의해 오악(五嶽) 중 하나로 꼽히며 나라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는 성스런 산이었다. 불교에 있어서도 팔공산은 중요한 수도처였다. 여러 명승(名僧)이 팔공산에서 수도하였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원효(元曉)과 지눌(知訥)이다. 원효는 617년(진평왕 39)에 출생하여 686년(신문왕 6)에 입적한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명승으로 오도암(悟道庵) 등 팔공산의 여러 곳에서 수도하였고,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도 동화사와 염불암에서 기도를 드리고 수도하였다. 이밖에도 팔공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인 동화사가 위치하는 등 여러 곳의 유서가 깊은 사찰과 암자가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약사여래 신앙의 총본산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약사여래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켜주는 부처로서 단순한 중생의 병고를 구제할 뿐만 아니라 의식주 문제는 물론이고 사도나 외도에 빠진 자와 온갓 어려운 일에 빠진 자를 구제한다. 따라서 약사여래 신앙은 서방정토의 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여래와 다르게 현세구복적인 면이 강하다. 이러한 약사여래와 관련하여 팔공산에는 7개의 약사불[동화사 입구 마애약사여래좌상, 동화사 대웅전 약사여래좌상,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 중봉 석조약사여래입상, 염불암 마애약사여래좌상, 삼성암 마애약사여래입상, 불굴사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유명하다. 1992년에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동화사에 건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팔공산은 역사적으로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성지였으며 조계종 교구의 본사가 있는 불교의 중심지이자 현세구복적인 약사여래 신앙의 성지였다. 또한 불교와 융합한 형태로 발전한 무속신앙에서 선호할 만한 조건을 갖춘 명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서가 깊은 대형 사찰과 개인이 운영하는 사찰과 암자가 팔공산 자락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팔공산의 여러 사찰과 암자에서는 기도, 영구위패, 인등공양, 각종 불사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기원 드리는 것을 돕고 있다. 팔공산 곳곳에 위치한 불상에서도 기원을 올리는 기도처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관봉(冠峰)에 위치한 갓바위가 대표적이다. 보물 제431호인 관봉(冠峰)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으로서 이 불상에 불공을 하고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절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기 위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갓바위는 대구 동구의 경계 너머인 경산 와촌면에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대구 동구의 관암사를 거쳐서 올라가는 등산길을 이용하고 있다. 이밖에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기생바위, 삼성암터 등과 같은 대구광역시 동구 소재의 장소가 많은 무속인과 기원을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도처로 사랑받고 있다.
[기복신앙의 중심지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산, 팔공산]
기복신앙(祈福信仰)이란 복을 바라는 신앙을 말하는 것으로 무병장수, 자손의 번창, 내세의 공덕, 재물 등과 같은 것을 바라며 기원하는 신앙이다. 팔공산은 이러한 사람들의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처로써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첫째, 대구 시내와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입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둘째, 팔공산은 신라가 나라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던 곳이며 무속적으로 기도를 드리기에 적합한 영험 있는 기도장소가 많은 산이다. 셋째,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강한 약사여래신앙의 중심지로서 약사여래에 소원을 기원을 드리기에 적합하다. 특히, 갓바위는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에 대한 명성이 높고, 평생에 소원 한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소문과 믿음이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넷째, 백일기도와 같이 특정기간 동안 계속해서 기도를 드리거나 영구위패, 인등공양, 각종 불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여러 사찰과 암자가 있다. 사찰과 암자에는 독성각(獨聖閣),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등이 있어 복을 기원하거나 무병장수 등을 기원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조건들로 인해 오랜 기간 여러 가지 소원과 소망을 가진 많은 사람이 팔공산의 사찰, 암자, 불상, 기도처 등을 찾아가서 촛불을 켜고 시주를 한 뒤에 기도를 드리면서 원하는 바를 기원하여 왔다. 1978년의 신문기사에 팔공산이 대구의 계룡산(鷄龍山)이라 불릴 정도로 사찰과 암자가 산재해 있고 불공과 기도를 드리기 위해 연간 50~60만 명이 찾아온다는 기록을 보면 그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기원하는 내용은 무병장수와 재물의 획득과 같이 시대적 변화와 무관한 것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도 보인다. 과거에는 남아선호 사상에 의한 아들의 출산이나 사업의 번창 등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수능시험, 공무원시험, 취업 등과 같은 보다 현실적이고 생업과 연관된 것들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갓바위가 수험생 부모의 기도처로 인기가 높은데 1994년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입시철이 되면 하루 평균 2~3천여 명의 방문객 수가 5~6천명 수준으로 증가하고 주말에는 4만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도 갓바위는 각종 시험과 취업을 소망하는 많은 사람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팔공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기도, 동제]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는 마을마다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공산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문보근이 저술한 『우리고장』을 보면, 동네마다 동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었는데 종류는 대략 3개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는 돌로 탑같이 쌓고 그 위에 지동 같은 돌을 세우고 그 주위에 큰 나무가 2~3그루 서 있는 형태이다. 두 번째는 선돌과 고목이 있는 형태이다. 세 번째는 고목만 있는 형태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제단들에서 풍작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이러한 제단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에 있는 안정자(安亭子), 박정자(朴亭子), 당동에 있는 국사당(國師堂)이 대표적이고 백안동, 용수동, 송정동, 신용2동 등에도 앞서 열거한 3가지 형태의 제단이 잔존하고 있다. 현재는 신용2동과 같이 동제를 하고 있는 마을이 소수 있지만, 대부분의 마을은 제단 흔적만 남아 있고 동제를 지내거나 치성을 드리는 행위는 찾아보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