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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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山呂氏 |
영어공식명칭 | SeongsanYeo Clan|SeongsanYeo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여양유를 시조로 하고, 여희길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하는 성산여씨는 1546년(명종 원년) 무렵 여희길(呂希佶)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후손들이 가창면 냉천 2리 여촌 마을 일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성산여씨는 중국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지내고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한 여어매(呂禦梅)를 여씨의 시조로 한다. 이후 여씨는 성산여씨와 함양 여씨로 분관되는데, 성산여씨는 고려 말 삼중대광을 지낸 여양유를 시조로 하고, 함양 여씨는 고려 대장군을 지낸 여임청(呂林淸)을 시조로 한다. 여양유에게는 두 아들 여위충(呂渭忠)·여위헌(呂渭賢)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창면 냉천 2리 여촌 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성산여씨는 여위충의 후손이다.
[입향 경위]
여위충의 9세손인 여희길이 1546년 무렵 군위에서 달성군 가창면 냉천 2리 여촌으로 입향하였다. 당시 마을 앞에 큰 하천이 흘러 마을 이름을 대천으로 하였는데, 이후 대천 서쪽에 여씨가 집단적으로 산다고 하여 여촌(呂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황]
달성군 가창면 냉천 2리 여촌 마을 성산여씨 집성촌에는 1990년대 후반 약 28가구가 성산여씨였으며, 지금도 20여 가구가 성산여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