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살림집[달성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523
한자 士大夫 -[達城郡]
영어공식명칭 House of Scholar-official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79년 - 달성 태고정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69년 - 달성 삼가헌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70년 - 하엽정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78년 - 도곡재 건립
달성 삼가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지도보기
하엽정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달성 태고정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지도보기
도곡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지도보기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에 있는 양반 사대부의 살림집.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에는 못골 마을, 묘골 마을, 솔례 마을, 인흥 마을을 비롯한 곳곳에 명문 거유의 후손들이 형성한 집성촌이 산재해 있다. 이들 집성촌에는 불천위(不遷位)와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신 가묘(家廟)를 갖춘 종택(宗宅)과 현조(顯祖)의 위선사업을 위해 건립한 사우(祠宇)와 누정(樓亭) 등 신분적 우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살림집에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추운 날씨에 맞춘 중북부 지역의 사대부 살림집은 폐쇄적인 ‘□’ 자형 공간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을 포함한 영남 지역과 호남 지역의 사대부 살림집은 다소 개방적인 ‘=’형 혹은 ‘「 」’형의 공간 구조를 이루고 있다. 더운 여름철에 통풍이 잘 되도록 개방적인 공간 구조를 이루고 있다.

[파회 마을의 달성 삼가헌과 하엽정]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파회 마을에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후손 박성수(朴聖洙)가 1769년(영조 45)에 건립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사대부의 살림집인 달성 삼가헌(三可軒)이 있다. 달성 삼가헌은 국가의 부름으로 국정을 맡고, 명예를 지키며, 인내하는 일 등 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바로잡는다는 선비의 절개를 담은 박성수의 별호이다. 박성수는 이듬해 달성 삼가헌 서편에 하엽정(荷葉亭)이라는 정각을 건립하였다. 원래 초가이던 달성 삼가헌은 이후 100여 년을 거치면서 대문채, 사랑채, 주문채, 안채, 별당채, 연못을 갖추며 현재의 살림집이 완성되었다. 부속 건물로 두 채의 화장실과 도장간이 있다. 사대부의 살림집답게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철저히 구분하면서도 한 가족의 편리한 삶을 고려하는 등, 전통 사회의 문화적 질서를 잘 반영한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묘골 마을의 달성 태고정과 도곡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 마을박팽년의 후손들이 세거해 온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달성 태고정(太古亭)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1479년(성종 10)에 살림집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의 달성 태고정 건물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지은 것이다. 달성 태고정은 한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다른 한쪽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을 설치한 특이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부섭지붕이란 서까래의 윗머리를 다른 벽에 고정시켜 퇴를 단 지붕을 가리킨다. 특이한 지붕의 태고정은 전체적으로 단조로우면서도 섬세한 건축미를 간직하고 있다. 도곡재(陶谷齋)는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박문현이 1778년(정조 2)에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 이후 박종우(朴宗祐)가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 도곡재(陶谷齋)로 명명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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