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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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혁 |
[정의]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현재까지의 경기도 가평군 지역에서 전개된 변천사.
[해방과 전쟁]
해방 이후 가평군의 가장 큰 사건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전개된 6·25전쟁이다. 경기도 동북부에 위치한 가평군 관내에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던 장소 곳곳에 전쟁 관련 기념물을 세워,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고 분단의 흔적을 기념하고 있다. 가평읍, 북면, 청평면 일대에 수십개의 기념비와 기념물이 있다.
[행정구역 개편]
1945년 11월, 38선 이북 지역인 북면 적목리의 북부 지역이 강원도 김화군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6·25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 11월 17일, 가평군의 수복 지구에 대한 행정권이 회복되었다.
1963년 외서면의 입석리·내방리·외방리가 양주군 수동면[현 남양주시 수동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에는 대통령령 제6542호[1973년 3월 12일 공포]에 근거하여 가평면이 가평읍으로 승격되었다. 같은 날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일부가 가평군 설악면으로, 양평군 서종면 삼회리가 가평군 외서면으로 편입되었다. 2004년 12월 1일에는 외서면이 청평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0년 12월 21일에는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기존의 가평역 대신 신(新)가평역이 들어섰다. 2015년 12월 16일에는 하면이 조종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6년 11월에 조종면 하판리가 조종면 운악리로 행정구역명이 변경되었다. 그 결과 행정구역으로 1읍 5면 125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가평의 지역정서]
가평의 지역적 특징을 상징적인 수치로 표현한다면 면적은 서울의 1.4배나 되지만 인구는 0.6%에 불과하다. 경기도 31개 시군과 비교한다면 면적은 상위 2위, 인구 밀도는 하위 2위, 그리고 군으로 남아있는 3곳 중 하나이다. 여기에 가평의 생활권도 서울과 가까운 청평리를 중심으로 강원도 춘천 생활권, 경기도 남양주 생활권으로 구분하고 있다.
가평군민 다수가 느끼는 정서 중에 분단 소외감도 크게 드리워져 있다. 경기 북부의 주전장(主戰場)으로 60년 넘게 군사시설에 상당한 토지와 시설을 제공하였지만 지역 경제와 복지를 위한 별다른 혜택이 없었다. 경기 북부 주민도 마찬가지지만 가평군에도 ‘소외와 상대적 박탈감’이 강하다.
여기에 가평군 인구수는 50년 넘게 6만 명 전후로 큰 변화가 없고, 뚜렷한 산업 시설이 없다는 사회적 조건도 주민들 삶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가평의 행정 구호는 물론 주민 다수의 대안은 언제나 ‘관광 가평’에 모아져 있다. 관광의 필요충분조건은 구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과 멀지 않은 지역 조건, 기존의 대성리 국민관광단지와 남이섬 선착장 운영, 아침고요수목원·쁘띠프랑스·청평호반, 그리고 광범위하게 들어선 펜션 등 곳곳에 레저 및 관광 장소가 많다. 2010년 이후 수도권 전철 경춘선의 복선화와 새롭게 단장한 대성리역·청평역·가평역도 관광객을 기다리는 지역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그래서 가평은 오랫동안 지속된 소외에서 벗어나 ‘장미빛 희망’을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