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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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國功臣 申崇謙」 |
영어공식명칭 | Narratives of Shin sung-gyeom |
이칭/별칭 | 평산신씨 시조 이야기,개국신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성치원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9년 2월 9일 - 「개국공신 신숭겸」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가평군민 신구순에 의해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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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4년 - 「개국공신 신숭겸」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수록 |
채록지 | 달전1리 마을회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308-3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신숭겸|왕건|도굴꾼 |
모티프 유형 | 인물 모티프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1리에서 전승되는 장군 신숭겸 무덤 도굴과 관련된 설화.
[개설]
「개국공신 신숭겸」 설화는 태조 왕건의 명령으로 금으로 만든 장군 신숭겸의 두상을 안치한 무덤을 일제 강점기 때 도굴꾼들이 도굴을 히려면 무덤에서 말굽소리가 나서 도굴을 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개국공신 신숭겸」 설화는 2009년 2월 9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1리 마을회관에서 가평군민 신구순으로부터 채록하였다. 「개국공신 신숭겸」 설화는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숭겸 장군은 활을 잘 쏘았으며 배현경 장군, 김낙 장군, 태조 왕건과 함께 의형제를 맺었다. 대구 팔봉산에서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의 부대가 격렬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왕건의 부대가 포위되자 왕건과 비슷한 머리모양을 가진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앞장서서 싸웠다. 견훤의 부대는 선봉대에서 싸우고 있는 장수를 잡아 목을 치고 보니 왕건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왕건은 무사히 피신을 하였으며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건국하였다. 훗날 왕건은 신숭겸의 희생을 기리를 위하여 신숭겸의 두상과 같은 모양의 머리를 금으로 만들고 시신을 안치하여 3개의 봉분을 두었다. 일제 강점기 때 도굴꾼들이 신숭겸 장군의 묘소에 금으로 만든 두상을 도굴하려고 하였다. 당시 신숭겸 장군의 묘소를 지키고 있던 묘지기가 밤이면 잠을 자다가도 말굽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도굴꾼들이 신숭겸 장군의 묘소를 파헤치려면 말굽소리가 나서 도굴하지 못하였다.
[모티프 분석]
「개국공신 신숭겸」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인물 모티프이다. 태조 왕건과 활을 잘 쏘는 신숭겸 장군이 다른 장수들과 의형제를 맺은 것은 당시의 혼란한 시대를 알려준다. 후삼국시대의 혼란한 상황속에서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고 건국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이다. 신숭겸 장군은 대구 팔봉산전투에서 견훤의 부하에게 잡혀서 목이 잘리는데, 신숭겸 덕에 목숨을 구한 왕건이 추후 금으로 두상을 만들고 3개의 봉분으로 신숭겸의 묘소를 만들었다. 그것은 활, 의형제, 충신, 개국공신, 황금으로 연결되는 왕과 신하의 건국신화이다. 태조 왕건은 자신을 위하여 희생한 신숭겸 장군을 왕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명당에 모시고 황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시신을 3개의 봉분으로 보호함으로써 개국공신에 대한 예우를 극진하게 하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 때 도굴꾼들이 개국의 신화를 파괴하려할 때 말굽소리[용마]를 등장시켜 건국의 신화를 보호하였다. 이는 새로운 개국, 광복을 향한 민중의 노력으로 신화와 현실 세계가 경합하는 이야기가 바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