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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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事件 追慕公園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신차로 2924[대현리 50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욱 |
설립 시기/일시 | 2004년 - 거창사건 추모공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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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거창사건 추모공원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506 |
현 소재지 | 거창사건 추모공원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506 |
성격 | 추모공원 |
설립자 | 대한민국 정부|거창군 |
전화 | 055-940-8510 |
홈페이지 | http://www.geochang.go.kr/case/Index.do |
[정의]
한국 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자행된 거창 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공원.
[개설]
흔히 ‘거창 사건’으로 불리는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 전쟁 기간에 패퇴한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당시 공비 토벌을 위해 특별히 창설된 국군 제11사단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11사단 9연대 국군 장병들은 거창군 일대에서 공산당과는 무관한 비무장의 주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1950년 12월 10일에 군인들은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증산 마을에서 정동해 3형제를 거동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사살했다. 또 1951년 1월 22일에는 북상 지서에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심문하여 인민군에게 밥을 해 준 마을 사람 여섯 명을 야산으로 끌고가서 사살했다. 한동석 소령이 지휘하는 3대대는 1951년 2월 5일 새벽에 거창읍에서 신원면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정보 장교 이종대는 덕산리 내동 마을에서 주민 4명을 총살했다. 2월 9일 새벽에는 청연 마을에 들어와 집에 불을 지른 뒤 마을 앞 논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제 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8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을 당했다. 2월 10일에는 와룡리 방면 주민들을 면 소재지 방향으로 끌고오다가 탄량골에서 가격을 가해 100여 명을 학살했다. 2월 11일에는 신원 초등학교에 있던 마을 주민들을 박산 골짜기로 끌고 가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이 박산 골짜기에서 517명이 죽고 3명이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 사이에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에 의해 학살된 주민들은 719명에 이른다.
이후 거창 지역 출신 국회 의원과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했을 때에도 군의 명예를 지키는 것에 급급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공비와 연결된 통비자로 몰고 갔다. 그러나 거창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상을 덮으려고 한 군인들의 잘못이 일부 드러났다. 거창사건 추모공원은 한국 전쟁 당시 1951년 2월 9일에서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장병들에 의해 집단으로 희생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조성된 공원이다.
[설립 목적]
한국 전쟁 당시 빨치산 진압 과정에서 국군에 의해 희생된 거창 지역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의 명예를 보상하며, 거창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변천]
1996년에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제정되어 추진된 사업이다. 총 부지 면적 49,133평[약 162,423㎡] 규모의 합동 위령 시설 사업을 1998년에 착공하여 2004년에 준공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거창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 및 학술 대회와 추모 행사 등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현황]
공원은 희생자들의 위패를 봉안한 곳과 역사 교육관, 영상실[세미나실]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 전쟁 당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국가에서 그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그 법에 의거해서 조성한 기념 시설이라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