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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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査察 遊擊隊 |
영어공식명칭 | Sachal Yugyeokdae |
이칭/별칭 | 비호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정 |
설립 시기/일시 | 1951년 - 사찰 유격대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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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54년 - 사찰 유격대 해체 |
성격 | 유격대 |
설립자 | 거창 경찰서 사찰 주임 유봉순 경위 |
[정의]
1951년 경상남도 거창군에 설립된 과거 공비 출신의 빨치산 토벌 유격대.
[개설]
1951년 봄 당시 거창 경찰서 사찰 주임이었던 경위 유봉순이 창설하였다. 사찰 유격대 대원들은 빨치산 출신으로 조직되었는데, 이 중에는 빨치산에 납치되어 강제로 빨치산 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사찰 유격대는 누구보다도 공비들의 생태와 이동 경로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빨치산의 토벌에 크게 공헌할 수 있었다.
[설립 목적]
빨치산은 지리산과 덕유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거창 지역 경찰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하였고, 산간 마을에서는 ‘보급 투쟁’으로 군경과 민간의 피해가 컸다. 이에 거창 경찰서는 지역의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빨치산 활동을 했다가 귀순한 이들을 조직해 그들의 경험을 이용하여 빨치산을 토벌하고자 사찰 유격대를 창설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김명식 부대에 대한 소탕 작전이었다. 김명식은 거창 출신의 빨치산 대장으로 사찰 유격대에 의해 1952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사선대에서 사살되었고 부대가 궤멸되었다. 그 외 활동으로는 『경향 신문』을 보면, 1952년 2월 지리산과 신불산 등지에서 공비 소탕 활동이 있었다. 『동아 일보』에서도 1953년 2월 거창에서 국군으로 위장한 무장 공비가 출현하여 버스를 세우고 금품을 빼앗고 양민을 납치하자 사찰 유격대가 공비를 추격, 사살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사찰 유격대는 빨치산 토벌에 큰 공을 세웠으나 민간인 학살에도 연루되었다. 1951년 11월에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민간인 김점순이 사찰 유격대의 사격으로 사망하였다.
[현황]
사찰 유격대는 창설 이후 4년간 빨치산 토벌에 기여하였고, 거창 인근 빨치산이 거의 소멸되자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의 사찰 유격대는 과거 빨치산의 경험을 통해 지역의 빨치산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나 토벌 과정 중에 민간인을 학살해 안타깝고 비극적인 희생을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