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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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蘊家-遺品 |
영어공식명칭 | The Relics of Jeongon Family |
이칭/별칭 | 동계 관복,정온 유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수남로 2181[김천리 216-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용 |
제작 시기/일시 | 조선 시대 - 정온가의 유품, 동계 정온 집안의 유품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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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11월 23일 - 정온가의 유품, 정온의 제복이라는 명칭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18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8년 - 정온가의 유품 거창 박물관에 기탁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9월 25 - 정온가의 유품, 정온의 제복에서 명칭 변경하고 36점이 추가 지정되어 국가민속문화재 제218호로 총 41점이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온가의 유품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거창 박물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216-5 |
원소재지 | 동계 정온 종택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
출토|발견지 | 거창 모리재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 |
성격 | 유물|문서|의복|생활용품 |
소유자 | 정완수[초계 정씨 동계 종손] |
관리자 | 거창 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창 박물관에 있는 조선 시대 문신 동계 정온 문중의 유품.
[개설]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대사간, 대제학,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숙종 때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정온가(鄭蘊家)의 유품은 동계 정온과 정온의 후손들이 사용한 복식과 전적류와 생활 자료들이다. 유품은 총 41점에 이른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고문서와 교지, 정부인 강씨 묘표문, 내사본 중용, 석침, 치제문 5점이며, 복식류가 제복, 조복, 상(裳), 중단, 금관, 운문사 겹단령(雲紋紗裌團領), 화조문 갑사 홑철릭, 화문 갑사 겹원삼(花紋甲紗裌圓衫), 갑사 겹동다리, 갑사 홑동다리, 도투락댕기, 원삼대, 첩지머리, 족두리, 용잠, 풍차, 사모, 각대, 목화, 차선, 전대, 광대, 관자[1쌍], 패옥[주머니 포함, 1쌍], 홀(笏), 어사화(1쌍) 등 26점이 있다. 생활 자료로는 죽선, 쌈지, 꿩채, 인장[2점], 호패[5점] 등 10점이다.
유물 가운데 제복과 조복, 상, 중단, 금관 등 5점은 지난 1987년에 ‘정온의 제복’이란 명칭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1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조사를 통해 관련 전적류 13점과 후손들의 유물인 복식류 21점, 생활 자료 10점을 추가 지정하였고 ‘정온가의 유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정온가의 유품들은 1982년 동계 선생의 말년 거처인 모리재(某里齋)[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07호]에서 발견하였고,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거창 동계 종택[경상남도 국가민속문화재 제205호]에 보존하였다. 1988년 학술 자료 활용과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거창 박물관에 기탁하였다.
[형태]
제복(祭服)[제218-1호]: 제복은 문·무 관리들이 왕과 함께 종묘사직에 제사 지낼 때 입는 옷으로 짙은 청색, 길이 87㎝이다.
조복(朝服)[제218-2호]: 조복은 문무백관들이 나라의 대사(大祀)·경축일·원단(元旦)·동지 및 조칙(詔勅)을 반포할 때나 진표(進表)할 때에 입었던 관복이다. 붉은색으로, 길이 82㎝이다.
상(裳)[제218-3호]: 조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 함께 착용하던 붉은 색 치마 형태의 옷이며 앞은 3폭, 뒤는 4폭, 길이 76㎝, 허리 길이 75㎝이다.
중단(中單)[제218-4호]: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입는 조복이나 제복의 속에 입던 푸른 옷이며 길이 120㎝, 품 42c㎝m, 화장 93㎝, 가장자리는 검은색 선을 둘렀다.
금관(金冠)[제218-5호]: 조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금관으로 양관(梁冠)이라고도 한다. 1품 관리가 썼던 5관량이다. 장식이 다른 금관에 비해 매우 정교하다.
교지(敎旨)[제218-6호]: 1626년 동계 정온이 경상도 관찰사 겸 병마 수군절도사에 임명된 고신(告身)으로 우측 하단부가 일부 결실되었다.
정부인 강씨 묘표문(貞夫人姜氏墓標文)[제218-7호]: 정온이 친필로 지은 어머니 강씨의 묘표로 우측 하단부는 소실되었다. 현재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내사본 중용(內賜本中庸)[제218-8호]: 인조가 예조 참판 정온에게 1635년(인조13) 8월에 하사한 내사본이다. 당시 우승지 한모(韓謀)의 수결이 있고 ‘선사지인(宣賜之印)’이 찍혀 있다.
석침(石枕)[제218-9호]: 정온의 화엽시(花葉詩)를 새긴 오석(烏石)의 석침이다. 유려한 필체로 정온이 만년[1637년]에 지은 시로 유명하다. 정조 대왕 정사년(1797년) 대과 시제(詩題) 문제로 출제되기도 하였다.
花葉詩(화엽시)
崇禎年號止於斯(숭정연호지어사)[숭정 연호[명나라 1628년[의종]부터 1645년 사이에 사용하던 연호]가 여기에서 그치니]
明歲那堪異曆披(명세나감이역피)[내년에 어찌 다른 달력[청나라]을 펼치리오?]
從此山人尤省事(종차산인우성사)[앞으로 산인[정온]이 더욱 일을 살펴볼 때는]
只看花葉驗時移(지간화엽험시이)[단지 꽃과 나뭇잎으로 계절의 변화를 보리라.]
치제문(致祭文)[제218-10호]: 영조가 정온의 제향에 치제관으로 안의 현감 윤수동(尹秀東)을 파견하면서 내린 제문을 필사한 것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운문사 겹단령[제218-11호]: 청현색을 띠는 운문사(雲紋紗) 겉감에 남색 운문사 안감의 직령을 넣은 겹옷으로 당시에 흑단령으로 지칭되었던 유물이다.
화조문 갑사 홑철릭[제218-12호]: 철릭은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연결된 것으로 이 유물은 청현색 홑철릭이며 유물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화문 갑사 겹원삼[제218-13호]: 원삼은 조선 시대 대례복이며, 이 유물은 안팎에 동일한 화문 갑사(花紋甲紗)를 사용하였다. 연두색 겉감에 꽃분홍색 안감을 대었으며 소매에는 5가지의 색동을 달았다.
갑사 겹동다리[제218-14호]: 홍색 소매를 달고 남색 갑사 안감을 댄 겹동다리이다. 군복의 일부로 여러 복식류와 함께 군복의 일습을 이루었다.
갑사 홑동다리[제218-15호]: 짙은 갈색의 별문갑사에 홍색 소매를 달고 남색 갑사 안감을 댄 동다리이다. 소재는 겹동다리와 동일하나 길의 색이 쾌자의 색과 같아 황색 동다리 위에 쾌자를 착용한 것처럼 보인다. 유물의 상태는 양호하나 동정에 착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도투락댕기[제218-16호]: 너비 24㎝, 길이 114㎝로 상부 모서리 끝에 자색의 토주(吐紬)로 만든 댕기 끈이 붙어 있다. 검정색 용문(龍紋)이 있는 검정색 비단에 금박이 놓였던 흔적이 있다.
원삼대[제218-17호]: 원삼에 사용된 너비 6.5㎝, 길이 353㎝의 대대로 홍색 공단으로 만들었으며 다양한 길상적 의미의 금박 문양이 있다.
첩지머리[제218-18호]: 길이 5㎝의 개구리 모양 첩지는 검정색 천으로 싼 받침대가 부착되어 있으며 받침대 좌우에 월자(月子)를 내리고 분홍 면사로 고정시켰다.
족두리[제218-19호]: 족두리는 첩지 위에 올려 의식에 사용했던 것으로서 원삼 착용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섯 조각의 흑자색 공단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용잠(龍簪)[제218-20호]: 길이 35.7㎝이며 은으로 만들어졌고 양끝은 도금되었으며 잠두에 용장식을 부착했다.
풍차(風遮)[제218-21호]: 겨울에 쓰는 방한모로 흑색 양단으로 겉을 하고 안감으로 청색 융을 댔다. 겉감 문양은 박쥐문, 수복문, 화문 양단의 가장자리는 흑색의 빳빳한 모피를 둘렀다.
사모(紗帽)[제218-22호]: 단령에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모는 모정이 총 16㎝ 길이며 하단부는 9㎝이다.
각대(角帶)[제218-23호]: 각대는 남색의 공단으로 겉을 하였고 안은 녹색 화문으로 처리하였으며 모두 20개의 갈색 과판을 붙여 장식하였다. 관복 착용 때나 혼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목화(木靴)[제218-24호]: 혼례 시 단령, 사모, 각대 등과 함께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목화 밑면 길이 25㎝, 밑면에서 목화의 목까지 길이는 27㎝로 신바닥의 중앙에는 대칭형의 긴 삼각형 모양 구멍이 있다.
차선(遮扇)[제218-25호]: 신랑이 혼례청에 들어올 때 양손으로 들어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사선(紗扇)이라고도 한다. 두 개의 손잡이는 길이 49.5㎝이다.
전대(纏帶)[제218-26호]: 17㎝의 너비에 길이는 105㎝다. 긴 4조각으로 돌려가며 이어 붙여 만들었으며 한 면의 솔기가 모두 11개로 이루어졌다.
광대(廣帶)[제218-27호]: 군복[구군복]에 전대와 함께 사용, 요대(腰帶)라고도 함. 겉감은 짙은 갈색의 우단(羽緞)이고 안감은 투박한 청색 면포, 안에는 두꺼운 심지를 대어 전체적으로 뻣뻣하고 두껍다.
관자(貫子)[제218-28호]: 망건에 달아 당줄에 꿰는 작은 고리로 직경 1.9㎝와 0.4㎝ 높이의 옥으로 만들었다.
패옥(佩玉)[제218-29호]: 패옥을 넣는 패옥 주머니와 패옥걸이가 함께 있으며 패옥의 일부 장식줄이 떨어진 상태이다. 제복이나 조복에 착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품에서 3품까지는 번청옥(燔靑玉)을 사용하였다.
홀(忽)[제218-30호]: 조선 시대 관리들의 조복, 제목, 공복 등에 갖추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길이 30㎝, 위 너비 3.7㎝, 아래 너비 5㎝로 약간 휘어진 상태이며 손잡이 부분이 융으로 싸여 있다.
어사화[제218-31호]: 약 180㎝이며 세 가닥이 한 쌍으로 되어 1쌍 6줄로 되어 있다. ‘숭정 갑술(1634) 6월’ 의 묵서가 있는 기다란 목판 사이에 넣어져 있다. 꽃모양은 국화 형태와 유사하며 한지로 되어 있다.
죽선(竹扇)[제218-32호]: 대나무로 만든 부채이며 일반적인 형태이다.
쌈지[제218-33호]: 담배, 돈, 부시 따위를 싸서 가지고 다니는 작은 주머니. 가죽, 종이, 헝겊 따위로 만든다.
꿩채[제218-34호]: 책의 먼지를 털 때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인장[제218-35호]: 옥으로 만든 인장으로 사용자는 알 수 없다.
호패(號牌)[제218-36호]: 정온 후손들의 자료로 정식(鄭軾), 정기수(鄭岐壽), 정기상(鄭璣相)[안의 생원], 정중원(鄭重元)[정희량의 아버지], 정찬유(鄭纘儒)[정희량의 형]의 호패이다.
[의의와 평가]
정온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 이후의 복식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며, 또한 동계 정온과 직접 관련된 전적류는 정온의 역사적 위치나 활동 현황에 비해 현재 남아 있는 고문서 자료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보존 가치가 높은 중요 자료이다. 1987년 11월 23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