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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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某里齋 |
영어공식명칭 | Morijae |
이칭/별칭 | 거창 모리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농산리 6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종한 |
건립 시기/일시 | 1645년 - 거창 모리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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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704년 - 거창 모리재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07년 - 거창 모리재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6년 - 거창 모리재 화엽루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1년 - 거창 모리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8년 - 거창 모리재 붕괴 위험으로 동재 철거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5월 2일 - 거창 모리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모리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거창 모리재 동재 복원 |
현 소재지 | 거창 모리재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 |
성격 | 사당|재실 |
양식 | 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6칸[모리재]|3칸[사당] |
측면 칸수 | 2칸[모리재]|1.5칸[사당] |
소유자 | 정완수 |
관리자 | 정완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모리산 중턱에 동계 정온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재실.
[개설]
거창 모리재(居昌某里齋)는 조선 시대 광해군과 인조 때의 명신이었던 문간공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거하던 곳을 유림들이 기려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모리(某里)’라 하였으며, 산이름도 ‘모리산’이라 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농산리 673]에 위치한다. 북상면사무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지방도 37호선을 타고 1.2㎞ 정도 진행하다가 보면 도로의 좌측에 ‘모리재’ 표지판을 만난다. 이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면 강선대 마을에 이른다. 마을 내부 도로를 지나 모리산으로 연결되는 산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모리산의 중턱에 건립되어 있는 거창 모리재에 이른다. 거창 모리재는 강선대 마을 서쪽 2㎞ 지점에 있는 모리산 중턱에 있다.
[변천]
1645년(인조 23) 유림에서 영당(靈堂)을 세워 영정과 유물을 보존하고 제향하다가 1704년(숙종 30)에 소실되었던 것을 1707년(숙종 33)에 중건하고 ‘모리재’라 하였다. 1758년(영조 34)에 선생의 유허비를 세웠고, 1806년에 문루인 화엽루를 세웠다. 1921년에 대대적인 중건을 하여 거창 모리재, 사당, 동재, 서재, 화엽루로 구성하였다. 1948년에 훼손이 심한 동재는 철거하였다가 200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거창 모리재는 정자 거창 모리재를 중심으로 정면에 화엽루, 좌우측에 동재와 서재가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거창 모리재의 배면에는 사당이 있으며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서원의 형식을 갖추었다. 거창 모리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면의 반칸은 툇간을 구성한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부엌 1칸, 온돌방 2칸, 마루 2칸,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직절익공 양식으로 소로 수장하였고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가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단청이 시문(施紋)되어 있고 정면에는 일각문이 있다. 화엽루는 중층 문루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공포는 이익공 양식이며 단청이 시문되어 있다.
[현황]
거창 모리재는 강천리 마을 뒷산인 모리산의 북쪽에 있는 계곡 상류부에 동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강당 영역이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강당 배면의 우측에 사당이 있다. 산지의 경사 지형에 건립하여 강당 영역과 사당 영역의 높이차가 크다.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 지역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지냈고 또한 당대의 학자이자 의사(義士)로서 지역의 존경을 받는 인물을 모신 재실로 그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서원 형식의 건축물도 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