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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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谷里 |
영어음역 | Do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도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옛날 마을 입구에 부항천으로 합류하는 도랑을 가로지르는 큰 돌다리와 정자나무가 있어 마을로 들어가자면 돌다리를 건너고 정자나무를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돌아실·도래실·돌곡이라 하고 한자로 도곡(道谷)으로 표기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도래실·송천(松川)·신평(新坪)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도곡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도곡리로 개칭되었고 1971년 도래실·주치밭골·문질이 도곡1리, 송천·신평·가좌(加佐)가 도곡2리로 나누어졌다. 1993년 가좌가 도곡3리로 나누어졌으며, 1995년 김천시 지례면 도곡리가 되었다.
[현황]
도곡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3.81㎢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32세대에 239명(남자 119명, 여자 1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거물리, 남쪽으로 관덕리, 북쪽으로 상부리·교리와 이웃하고 있다. 도곡1리·도곡2리·도곡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인천 이씨·성산 이씨·남평 문씨 집성촌이다. 동쪽으로 국도 3호선이 지나고, 감천 변에 자리 잡아 예부터 벼농사가 발달했다.
자연 마을로는 도래실·주치밭골·송천·신평·가좌 등이 있다. 도래실은 부항댐 조성으로 수몰된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주하여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주치밭골은 조선 현종 때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인천 이씨 이시인(李始仁)이 처가가 있는 곳으로 옮겨 와 살기 시작한 이래 대대로 인천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문질은 부항댐 공사로 최근 페동되었다.
신평은 문의봉 아래 있는 마을로 조선 중종 때 상부리에 살던 성산 전씨 전시우(全始雨)가 옮겨 와 살면서 송천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웃새터[上新基]라 하였다가 헌종 때 후손인 전진욱(全鎭旭)이 신평으로 고쳤다. 옛날 밀농사를 많이 지었고 뒷산인 문의봉에 밤나무가 많아서 밀밤 또는 밀뱅이라고도 하였다.
송촌은 신평과 상부리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도래실에서 이주해 새로 이룬 마을이므로 처음엔 새터라 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피난 온 한 선비가 소나무가 우거진 문의봉과 맑은 감천 변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송천으로 바꾸었다. 문의봉은 지례향교와 마주하고 있어 학도들의 학풍을 진작시킬 것을 염원하여 달리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한다. 문의봉에는 장수가 바위로 턱걸이를 했다는 장수턱걸이바위가 솟아 있다.
가좌는 감천 너머 여시밭골과 큰골 초입에 자리 잡은 마을로 남평 문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옛날부터 남면 부상리와 함께 김천에서 유명한 양잠지여서 ‘더할 가(加)’자에 ‘누에 잠(蠶)’자를 써서 가잠(加蠶)이라 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해 가좌가 되었다. 예부터 마을 뒷산인 가좌고개가 해인사에서 직지사를 연결하는 가장 짧은 경로여서 승려들이 주로 이용했는데, 이 고개를 지나던 고승이 마을 입구에 있던 고목 아래서 쉰 뒤 일행들을 재촉하며 “가자, 어서 저 고개를 넘어가자.”라고 한 데서 고개와 마을의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수년 전 마을 뒷산에 산불이 발생하여 산림이 황폐해졌으나 지금은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