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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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巴川里 |
영어음역 | Pa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봄내·숲실·대밭마[일명 죽전(竹田)]가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파천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부항면 파천리로 개칭되었고, 1963년 파천1리·파천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가 되었다.
[현황]
파천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2.6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81세대에 143명(남자 71명, 여자 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두산리, 남쪽으로 하대리, 서쪽으로 대야리, 북쪽으로 안간리와 이웃하고 있다. 파천1리·파천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와 밀양 박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경작지가 좁아 벼농사가 발달하지 못했고 호두와 산나물을 주로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과 송시열의 현손인 송능상(宋能相)[1710~1758]을 배향한 춘천서원이 있다. 송시열이 세심대(洗心臺)에 들러 강론한 것을 기념하고자 구성면의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가 1756년에 세웠다.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본디 건물은 모두 뜯기고 지금 남아 있는 강당은 1956년 새로 세운 건물이다.
송능상의 수제자인 이의조를 따르던 김천 지역 노론 계열 중 연안 이씨 이수점(李遂漸), 하빈 이씨 이천복(李天復), 벽진 이씨 이덕근(李德根), 순천 박씨 박상태(朴相泰), 거창 신씨 신필검(愼必儉), 성산 이씨 이강수(李康壽) 등 6개 문중 선비들이 의기투합해 계를 모아 춘천서원을 관리하기로 약속한 이래 현재도 6개 문중 후손들이 매년 봄 곡우에 춘천서원에 모여 제를 올린다.
자연 마을로는 봄내·숲실·까리밭골·대밭마 등이 있다. 봄내는 마을 앞 구남천이 항상 봄날처럼 맑고 깨끗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구남천 변에 있는 세심대는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이 구남천을 찾았다가 이 바위에 올라 보고는 그 절경에 감탄하여 제자들을 불러 모아 마음을 깨끗이 씻는 곳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지난 수해 때 세심대에 서 있던 아름다운 바위가 떠내려갔다고 한다.
춘천서원 앞에는 구남천을 사이에 두고 문필봉(文筆峰)이 춘천서원과 마주하고 있으며 도로변에 하마비(下馬碑)가 남아 있다. 봄내는 1980년대 말 부항온천 개발 공사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는데 마을 뒤 가마골 일대는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숲실은 고지미재[일명 성재]를 사이에 두고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와 이웃하고 있다. 인근의 대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 금(金)의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으나 지금은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매년 음력 1월 14일 동구 밖에 있는 성황당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린다. 예부터 마을 주변으로 밀목령, 얼음밭골, 절골, 남박골 등 산림이 우거져 붙인 이름이다. 달리 임곡(林谷)이라고도 한다.
대밭마는 구남천을 사이에 두고 대야리 갈불과 이웃하고 있다. 뒷산에 대나무가 많아 붙인 이름으로 지금도 야산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까리밭골은 대동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다 중고개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예부터 마을에 꽈리가 많이 자라 꽈리밭골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하여 굳어진 이름이다. 예전 마을 진입로였던 청룡재가 풍수지리상 큰 부자를 내는 명당으로 알려져 부용(富龍)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