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4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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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戴山戰鬪 |
영어음역 | Deokdaesan Jeontu |
영어의미역 | Deokdaesan Batt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호동 |
[정의]
조선 왕조의 개국에 반대한 고려의 충의군이 김천 덕대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고려 말 우왕 때 벌어진 요동정벌 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의 급진적 개혁파와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왕조의 개창에 반대한 정몽주(鄭夢周)는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선죽교에서 격살됨으로써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켰다. 정몽주처럼 죽음으로써 항거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두 임금, 나아가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조선에서의 벼슬을 마다한 채 지방으로 낙향하여 끝까지 절의를 지킨 이색, 길재 등이 있었다.
『고려사(高麗史)』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의 사서류와 문집류를 살펴보면 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의 개국에 반대한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김천 등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의 덕대산성과 관련된 전설에는 조선의 개국에 반대하여 충의군을 편성한 이미숭(李美崇)이 덕대산성에서 태조의 군대와 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과]
구성면 흥평리와 대항면 향천리 방하재 사이에는 덕대산[811m]이 있는데, 이 산에 석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흥평2리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말 정몽주의 문하 안동장군 이미숭과 진서장군(鎭西將軍) 최신(崔信)이 이성계와 조선 왕조의 개국에 반대하여 관군과 충청도 미산(尾山)에서 접전했다가 패하고, 덕대산에 들어와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후퇴하여 성주를 거쳐 원산(元山)[가야산맥]에서 접전 끝에 전사하였다.
[결과]
고령에 있는 미숭산에 얽힌 이야기는 덕대산전투와 관련된 전설과 내용을 달리 한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 이성계의 집권에 항의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저버리지 않은 이미숭이 미숭산 정상에서 높이 3m, 둘레 1.5㎞의 석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후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울분을 참고 거사를 포기하여 산중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원래의 산 이름은 상원산(上元山)이었으나 이미숭의 이름을 따서 미숭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미숭은 1346년에 태어났지만 사망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본관은 여주, 호는 반곡(盤谷)이며, 어머니는 평강 채씨(平康蔡氏) 채윤(蔡允)의 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충절과 의리에 대한 언행을 일삼았고, 정몽주에게서 경학을 배웠다. 이미숭은 고려가 쇠퇴해 가는 것을 한탄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새겼는데, 무반으로 등용되어 관원으로 출세한 뒤에도 늘 병서를 읽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미숭은 북방 오랑캐의 침략과 왜구의 노략질이 있을 때마다 전장으로 나아가 무찔렀으며, 마침내 안동장군이란 직책을 받았다. 결국 고려 왕조가 멸망하자 스승의 뜻을 받들어 충의군을 조직하여 덕대산전투 등을 통해 태조의 군대에 저항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주민들이 덕대산에 피난하여 성을 수축하고 전쟁에 대비했으나 접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