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58 |
---|---|
한자 | 靑巖寺修道庵東西三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East·West Three Storied Stone Pagoda Near Sudoam Hermitage of Cheongamsa Temple |
영어음역 | Cheongamsa Sudoamsam Dong Seo Cheungseoktap |
이칭/별칭 |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 수도암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주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297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보물 재지정 |
건립 | 통일 신라 시대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 청암사 수도암 |
성격 | 석탑 |
양식 | 석조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동탑 3.76m|서탑 4.25m |
소유자 | 수도암 |
관리자 | 수도암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청암사 수도암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건립 경위]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조성하였다는 설이 전해져 오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위치]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번지 청암사 수도암의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마주보고 위치해 있다. 수도산(修道山)의 남쪽 산허리에 위치하고 멀리 연봉이 중첩되며, 그 너머 가야산 상봉이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세워져 있다. 법당과 탑과의 거리가 가깝지만 양 탑의 거리는 멀어서 원래부터 쌍탑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탑의 위치는 옛날에 옥녀(玉女)가 지상에 내려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춘 지대라고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본래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으로 불리었다.
[형태]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은 동탑의 높이는 3.76m, 서탑의 높이는 4.25m로 두 개의 탑 모두 삼층 석탑이다. 동탑은 단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방형의 삼층석탑이며, 동서 방향으로 긴 장대석을 놓아 방형의 지대석을 마련하고 위에 넓은 판석을 배치하였다. 면석에는 탱주의 모각은 없고 우주는 희미하며 안상이 새겨져 있다. 갑석은 동서로 긴 2매의 판석을 덮었는데 그 밑에는 부연이 새겨져 있지 않다.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호형과 각형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 층 하나의 돌로 되어있다. 초층 옥신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독특한 형태로 네 우주가 표현되어 있고, 4면에는 깊이 약 5㎝의 방형의 감실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는 연화대 위에 잘 정제된 여래좌상이 1구씩 양각되어 있는데 그 수법이 매우 뚜렷하고 단아하며 명확하다. 2·3층 옥신은 차례로 감축되었는데 각 모서리마다 우주만을 모각하였으며 옥개석은 얇고 넓은 편이고, 처마 밑은 직선이며, 낙수면은 반곡 없이 원만히 흘러 내렸다. 전각전은 매우 경미한 반곡이며 옥개석 받침은 1·2층이 4단, 3층이 3단이다.
상륜부에는 작은 갑석형을 이중으로 나타낸 작은 노반·복발·보륜이 남아 있고, 탑의 기반 주변에는 넓은 판석과 배례석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는 각 면에 한 개의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다시 한 돌로 된 중석과 갑석 등 4석으로 하층 기단을 형성하였다. 중석 각 면에는 우주와 1주의 탱주가 모각되었고, 갑석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으며 1단의 각형 굄이 있다.
상층 기단 중석은 각 면 한 돌씩으로 우주만을 모각하였다. 갑석은 1매의 판석으로 덮었으며 동탑과 같이 부연이 없으며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고 2단의 굄으로 옥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 층 한 돌이며 초층 탑신 사면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동탑에서와 같이 감실을 형성하지 않고 여래좌상을 1구씩 연화대 위에 부조상으로 처리하였다. 그 수법이 단아하고 명확하다.
옥개석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처마 밑은 직선이고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하다. 낙수면의 곡선 역시 거의 수평에 가깝다가 전각에서 가벼운 반전을 나타냈다. 옥개석 받침은 각 층 모두 5단이며, 처마에서 깊이 들어가 공간을 남겼다. 1층 옥신에 비해 2층 옥신이 크게 줄었으나 3층 옥신은 2층과 비슷하다. 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상륜부에는 노반·보륜·보주가 남아 있다. 두탑의 형식과 수법은 서로 다르며 한 쌍의 탑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조각과 모양이 다르다.
또한 두 탑이 위치한 거리도 너무 멀어 본래부터 쌍탑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당시의 신앙적 요청에 의하여 서로 상대한 위치이기는 하나 별개의 장소에 다른 형식으로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두 탑의 형식은 옥신과 기단 또는 옥개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두 탑은 동탑 초층 옥신의 형태와 감실 개설의 형식, 서탑 옥개 밑의 넓은 간극 그리고 동서탑의 옥개 형태 등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제작 연대는 대적광전 내의 석조비로자나불상에 준하여 신라 중기 이후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황]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은 국보 제452호이었던 것을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97호로 격하해서 재 지정된 것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1996년에 7500만 원을 들여 해체 보수하고, 1997년에는 900만 원을 들여 보호책을 설치했다.
[의의와 평가]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그 의의가 있다. 동탑은 1층 몸돌의 위가 좁고 감실을 두고 있고 서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점 등 특이한 수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