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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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直指寺快活懸板 |
영어음역 | Jikjisa Kwaehwal Hyeonpan |
영어의미역 | Kwaehwal' Signboard of the Jikjisa Temp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권희 |
제작 | 19세기 중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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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성격 | 현판 |
재질 | 소나무 |
크기(높이, 길이, 너비) | 79.0㎝[길이]|28.0㎝[너비] |
소유자 | 직지사 |
관리자 | 직지사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직지성보박물관에 걸려 있는 조선 후기 김정희(金正喜)의 친필 현판.
[개설]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금석 학자, 고증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 등 503여 종에 이른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다. 특히 난초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0년(헌종 6)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1848년(헌종 14)까지 9년간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때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노완(老阮)’은 ‘늙은 완당’이란 뜻으로 제주도 유배 후에 쓰기 시작한 호이다. 따라서 직지사 쾌활현판(直指寺快活懸板)은 60세를 넘긴 만년에 쓴 글씨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형태]
송판에 예서로 ‘쾌활(快活)’이란 두 글자를 크게 썼다. 왼쪽에 세로로 그의 호인 ‘노완(老阮)’을 쓰고 또 ‘완당(阮堂)’ 인을 양각하였다. 현판의 크기는 세로 28㎝, 가로 79㎝이다.
[특징/평가]
힘 있는 예서로 쓴 ‘쾌활(快活)’이란 두 글자의 뜻처럼 활동적이고 쾌활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