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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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山全氏 |
영어음역 | Juksan Jeonssi |
영어의미역 | Juksan Je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광동 |
집필자 | 송기동 |
입향 | 15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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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
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광동 묘광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광동 묘광마을 |
성씨 시조 | 전섭 |
입향 시조 | 전몽봉 |
[정의]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고 전몽봉(全夢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죽산 전씨의 시조는 백제의 개국 공신인 전섭으로 고려의 항몽전쟁 때 공을 세운 28세(世) 전한(全僩)이 좌리공신 죽산군(竹山君)으로 봉군되면서 죽산[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을 세거지로 하여 후손들이 살면서 본관으로 삼았고 이로서 전한을 중시조로 하였다. 5세 전공취(全公就)는 공부상서 상장군, 9세 전오이(全伍二)는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역임했고, 11세 전수언(全秀彦)이 익산으로 이거하면서 익산교수파(益山敎授派)를 형성했다.
[입향경위]
죽산 전씨는 중시조인 전한으로부터 11세에 이르러 12개 파로 분파되었다. 김천 지역의 죽산 전씨는 조선 중종 때 익산향교 교수를 지낸 11세 전수언으로부터 분파된 익산공파이다. 익산공의 손자 13세 전몽봉이 임진왜란 때 익산에서 김천시 대광동 묘광마을로 이거해 정착하면서 김천의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죽산 전씨가 김천에 입향한 이후 19세 전태문(全台文)은 절충장군용양위(折衝將軍龍驤衛)를 지냈다.
[현황]
1978년에 간행된 『죽산 전씨 세보』와 후손 전영수에 의하면 김천 지역의 죽산 전씨는 50~60호 정도로 알려져 있다. 2010년 현재 50가구에 100여 명의 후손이 김천시 대광동 묘광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관련유적]
김천시 대광동 묘광마을 앞에 있는 묘광지(妙光池)를 조성할 때, 죽산 전씨 문중에서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