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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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仁尙 |
영어음역 | Gim Ins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우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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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김해(金海)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활동 사항]
김인상(金仁尙)은 1728년(영조 4) 무신란을 일으킨 정희량(鄭希亮)이 거창군을 함락하자 난의 주모자인 이웅보(李熊輔)와 정희량 등을 체포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반란군 이웅보가 거창군의 속오(束伍) 8초(哨) 및 자신의 수하 군사 5초를 거느리고 우지치(牛旨峙)에 진을 치자, 이 곳에 거창천총(居昌千摠) 정빈주(鄭彬周)가 쳐들어갔다.
정희량은 함양병(咸陽兵) 7초, 금위군(禁衛軍)의 안음군(安陰軍) 3초 및 금위군을 거느려 합쳐 12초 남짓이 되어 소사(所沙)에 진을 쳤다. 이곳에는 어영장관(御營將官) 여해달(呂海達)·금위장관(禁衛將官) 남태정(南泰鼎)·어영기총(御營旗摠) 배두필(裵斗必) 등이 쳐들어갔다. 이때 김천 출신 김인상도 참여하여 적괴를 체포하는 데 공을 세웠다. 우지치는 바로 김천시 지례면의 지경이고, 소사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지경이며, 거리는 10리[4㎞] 남짓 되었다. 김인상은 반란 세력들의 김천 진출과 나아가 영남 지방으로의 확대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무신란이 평정된 후 조정에서 녹훈 일등에 절충장군을 가자하고, 정조가 가선대부 동중추에 증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