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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774
한자 金振玉
영어음역 Gim Jino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무신
성별
대표 관직 독전장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활동 사항]

김진옥(金振玉)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천성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강개지사의 기질이 있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웅보(李熊輔)와 정희량(鄭希亮) 등이 거창을 함락하자 경상감사 황선(黃璿)은 성주목사(星州牧使) 이보혁(李普爀)을 우방장(右防將)으로, 초계군수(草溪郡守) 정양빈(鄭暘賓)을 좌방장(左防將)으로 삼고, 선산부사(善山府使) 박필건(朴弼健)으로 하여금 본진(本鎭)의 군사를 거느리게 하였다. 이때 대구영장 하옥(河沃)이 병이 심하여 출전할 수 없게 되자, 감사는 군관 김진옥을 가영장(假營將)으로 차출하였다.

김진옥은 독전장(督戰將)의 임무를 띠고 여러 고을의 진군하는 군사를 독려하면서 적진에 뛰어들었다. 정병(精兵) 3초(哨)를 중심으로 고령과 현풍(玄風) 군사의 협력을 받아 토벌의 선두에 나섰다. 합천에 이르러 많은 군공을 세웠고, 이어 거창으로 전진하였다. 적들의 위세가 대단하였으나, 누더기 옷으로 변복하여 적진에 잠입하여 역적을 따르지 말 것을 종용하여 기강을 무너뜨리기도 하였다. 낮에는 회유하고 밤에는 격문을 붙여 신하와 역적의 도리를 설파하였다.

그리고 산에 올라 고함을 치고 북을 두드려 적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또한 군기를 흔들며 “희량은 천하의 둘도 없는 역적이다. 너희들은 나라의 신하로서 어찌하여 적을 따르는가, 멸망을 자초하려는가?”라고 하면서 적진이 동요하게 만들었다.

반란이 진압되고 이듬해 호조참판 박사수는 군관인 김진옥이 군공(軍功)이 많으므로 조사하여 시상(施賞)할 것을 주청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진옥은 양무공신에 녹권되고 오위장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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