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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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鴻翰 |
영어음역 | Im Cheongang |
이칭/별칭 | 순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경희 |
출생 | 15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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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 1594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
정자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 쌍호정 |
비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순거.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이고, 아버지는 참의 장곤이다.
[활동 사항]
장홍한(張鴻翰)[1571~1594]은 의기가 초인하고 지략이 절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승 찬희와 그 상좌승 수정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10월에는 황간의 의병장 박이룡과 더불어 김산, 지례, 개령, 선산 네 개 읍의 유적을 토멸하는 데 전력하였다. 1594년 3월 진중에서 2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상주목사 정기룡이 친히 염습하였으며, 순찰사 안효순도 군정과 제미(祭米)를 보내 장례를 돕게 하였고 왕이 제문으로 치제하였다. 이여송도 부음을 접하자 천하 영재라 칭상하고 만시에서 “촉산이 높고 촉수가 깊어도/ 너를 이하로 보내는 내 정에는 미치지 못하리[蜀山高蜀水深/不及伊吾送爾情].”라고 애도하였다. 송환기가 각기(刻記)를 닦고, 장석룡이 묘갈문을 지었다.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에 장홍한을 기리는 쌍호정(雙湖亭)과 쌍호장선생유허비(雙湖張先生遺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