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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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末永 |
영어음역 | Do Malyeong |
이칭/별칭 | 도말용(都末用),도동영(都東永),이말용(李末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호상 |
출생 | 1891년 3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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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919년 4월 28일 |
활동 | 1919년 4월 6일 |
몰년 | 1935년 6월 22일 |
추모 | 2002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김천 |
활동지 | 경상북도 김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만세 시위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도말영(都末永)은 1891년 3월 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도말용(都末用), 도동영(都東永), 이말용(李末用)이라 불리기도 했다. 도말영은 농민으로서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에서 전개된 네 차례의 만세 시위 가운데 1919년 4월 6일에 일어난 4차 시위에 가담하였다.
개령면에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는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가담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위를 확산시키려 한 김태연[일명 김단야]에 의해 전개됐는데, 다른 지역과 달리 결혼 피로연에 참가한 인물들을 대상으로 전개한 시위로서 마을 주민 수백 명이 참가하였다. 이후 4월 초에 2차 시위와 3차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개령읍 밖의 산상에서 3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부른 4차 시위는 머슴[雇人]들이 주동한 것으로서 전국에서 유례가 드문 경우였다. 도말영은 김임천·김타관 등과 함께 체포되어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부터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상훈과 추모]
200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