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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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鍾華妻金海金氏旌閭閣 |
영어의미역 | Monument Shrine to Mrs. Gim from the Gimhae Gim Clan, Wife of Yi Jonghwa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102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혜숙 |
건립 | 184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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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 1853년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1020 |
성격 | 정려각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종화 처 김해김씨의 정려각.
[개설]
이종화 처 김해 김씨는 남달리 성질이 온유하고 공손하며 학식에 능하고 일찍이 삼종지의(三從之義)를 깨달았다. 김씨 부인은 16세에 강양(江陽) 이종화(李鍾華)에게 시집가 시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모셨으며, 이로 인해 효부로서 칭찬이 높았다. 일찍이 남편이 병들자 정성으로 간병하다가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상처 내어 피를 남편 입에 드리웠다.
남편이 죽자 애통해하다 몇 번이나 기절하고, 입관 날은 식구들에게 말하기를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어찌 사사로운 힘으로 용납할 수 있으리오.” 하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킨 다음 방에 들어가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남편과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참으로 지극한 애정이라 할 수 있다.
부인의 이러한 열행(烈行) 사실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録)』에 실려 있으나 세상에 드러나지 아니하였는데 그의 아들 이윤기(李潤基)가 장성해서 어머니의 열행을 기리고자 간곡히 나라에 상소하니 그 상소문을 가상히 여겨 임금의 특명으로 정려를 짓게 하고 그 일가에 모든 호역(戸役)을 면제토록 했다고 한다.
[위치]
정려각은 김천시 농소면 봉곡1리 샙띠마을에서 남으로 1㎞쯤 떨어진 길옆 개울 건너편에 자리하며, 백일홍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변천]
정려각은 1847년에, 정려비(旌閭碑)는 1853년에 세워졌다.
[형태]
정판에 ‘강양이종화지처김해김씨지려(江陽李鍾華之妻金海金氏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그 밑의 현판에는 ‘용양위대호군청주정내석(龍驤衛大護軍清州鄭來錫)’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현황]
이종화 처 김해김씨 정려각은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창살이 파손되고 건물이 허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