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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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和聖堂 |
영어음역 | Pyeonghwa Seongdang |
영어의미역 | Pyeonghwa Catholic Church |
이칭/별칭 | 천주교 김천평화교회,김천평화성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순환길 204[평화동 406-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원자 |
설립 | 1958년 10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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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동 406-1 |
성격 | 성당 |
설립자 | 탁세영 파비안 신부 |
전화 | 054-434-1785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
[개설]
김천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일대의 신자들이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의 산악 지대로 은거하여 신앙촌을 형성하면서부터이다. 칠곡 왜관 가실성당의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신부가 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건의하여 김천성당 설립을 허락받고, 1901년 5월 27일에 김천본당[현 김천황금성당] 초대 신부로 마잠마을로 이사 와서 얼마 동안 머무른 후 김천시 황금동 자라밭골에 3칸 초가집을 구입해서 5칸으로 늘여 사목을 시작하였다. 1956년 성 베네딕트 수도원에 소속된 탁세영 파비안 신부가 김천황금성당 7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재임하던 중 새로운 성당을 신설할 계획을 세워 1958년 10월 25일에 평화성당을 설립하여 초대 신부로 부임하였다.
[변천]
탁세영 파비안 신부는 평화성당 건립을 위해 지인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내어 협조를 요청했는데, 독일의 자선가들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았다. 특히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신부의 성당 설계도는 예술적인 가치를 더욱 높였으며, 수사들이 수작업으로 열성을 다한 끝에 성당을 견고하게 건축하게 되었다. 일반 신자들은 성당 건립에 기초와 본 공사에 많은 노동력을 제공하여 본당 신부의 노고에 보답하였고, 유창국 초대 본당 회장은 부지 선정에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여 난민 거주지 50여 가구와 토지를 매입하도록 추진하였으며 본인 소유의 토지 약 3,300㎡[1,000평]도 봉헌하였다. 1958년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독일 뮌헨의 자선가들이 희사한 3개의 큰 종과 독일 바이에른 주 정부의 총리가 희사한 거대한 그리스도 왕 십자가를 축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천 지역의 인재 양성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성의여자중학교와 성의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하였으며, 지역 주민의 사회복지에도 관심을 두어 종합병원을 세울 부지[현 공동사제관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한 농촌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1960년 김천시 어모면에 아천공소, 1968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에 직지공소를 창설하고, 1981년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와 신암리에 광천공소와 신암공소를 각각 창설하였다.
[현황]
평화성당은 대지 4,398㎡[2,800평]에 건평 2,800㎡[371평]이며, 성당 출입문은 7성사를 의미하는 7개의 문을 두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천장에서 제대로 향한 5선이 십자가상으로 모여 있는데, 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오상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제대 위벽에 있는 12개의 작은 창은 12사도를 의미하며, 벽면에는 동판으로 특수 제작한 십자가의 길 15처를 장식하였다. 관할 구역은 평화 1~2동, 부곡 1~2동, 다수 1~2동, 남산 1동과 남산 2동 일부. 성내 1동과 성내 2동 일부, 신음동, 교동, 문당동, 삼락동, 봉산면, 대항면, 어모면 지역이다. 2016년 현재 주임신부는 신영규 베드로 신부이며, 신도 수는 4,041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