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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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亭里鳳山洞祭 |
영어음역 | Hwangjeong-ri Bongsan Dongje |
영어의미역 | Village Tutelary Festival in Bongsan Village, Hwangjeong-ri |
이칭/별칭 | 웃뜸 동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황정리 |
집필자 | 박영숙 |
중단 | 1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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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황정리 봉산마을 |
성격 | 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일|7월 1일 자정 |
신당/신체 | 상당|하당|느티나무|조산[돌무더기]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황정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황정리 봉산 동제는 음력 1월 1일과 7월 1일에 김천시 증산면 황정리 봉산마을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동신(洞神)에게 무병과 풍년을 빌며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이를 ‘웃뜸 동제’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황정리 봉산마을은 원래 원황정에서 나누어진 마을로 수해로 폐동된 고무실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2010년 11월 현재는 14가구가 살고 있지만 한때는 25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수령 500년이 되는 정자나무가 있어 동제의 상당산님으로 모시고 매년 1월 1일과 7월 1일에 동제를 지내왔는데 1980년부터는 지내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황정리 봉산마을의 동제당은 입구에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를 상당의 당산목으로 하고 마을 입구에 만들어진 2개의 조산을 하당으로 모셨다. 봉산 주민들은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를 남신(男神)으로, 원황정의 2개의 조산 옆에 선 두 그루의 전나무를 여신(女神)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래뜸인 원황정 주민들 사이에서는 별도로 2개 조산을 영감과 할마이신으로 내외를 지칭하고 있다. 현재 윗뜸의 남신격인 신목 주위는 시멘트로 3단계의 제단을 만들었고, 아래뜸의 여신격인 전나무 사이에 위치한 2개의 조산에도 제단을 만들어 주위를 정결하게 유지하고 있다.
[절차]
제일이 다가오면 동회를 열어 이틀 전까지 제관 1인과 유사 2인을 선정한다. 가정을 이룬 성인 남자이고,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며 다수의 주민들이 찬성해야 한다. 제주로 선정된 제관은 여러 가지 잡다한 금기를 1년 동안 지키며, 유사는 제관을 위해 모든 일에 협조를 하고 제례의 모든 준비를 맡아서 처리하게 된다. 아울러 주민들도 제단 주위를 공동으로 청소를 하고 왼쪽으로 꼰 금줄 새끼를 치고 깨끗하지 못한 사람과 궂은일을 본 사람, 외지 사람들의 접근을 엄격하게 금한다.
헌관과 제주는 용모가 깨끗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유사는 제물 장만과 진설 의례에 능숙한 사람을 뽑는다. 제주와 유사는 제사일 3일 전부터 목욕하고 근신하여야 하며, 1년 동안 문상과 문병을 금하고 매운 양념을 먹지 아니하고 부정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
선출된 제주는 제사일 23일 전부터 몸을 깨끗하게 하고 근신을 하는데 동제사를 모시는 날에는 주민들도 모두 목욕을 한다. 제주와 유사는 뒷산 아래에 위치한 당우물에서 하루에 2번씩 목욕을 하고 황토를 일정한 간격으로 놓고 금줄을 치고 타인의 출입을 금하는데, 이때 제단이나 우물 주위에 침을 뱉을 수 없고 담배도 피울 수 없다.
제사 당일 자정이 되면 제주의 집에서 깨끗하게 만든 제물을 가지고 제사상을 차리는데, 제주와 유사는 흰 한복을 입고 음식을 풍성하게 장만하여 제단에 옮겨 진설하고 조용한 가운데 집전을 하게 된다. 제물과 제사 그릇은 당우물의 물로 깨끗이 씻고 우물물 한 동이로 모든 제사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제물은 삼색실과, 건어물, 돼지고기, 술, 수박[여름 제사]과 양초 2자루를 놓고 그 외에 제관의 정성에 따라 몇 가지 제물이 첨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름 제사는 밥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옛날에는 돼지를 잡아 그 머리를 날것으로 사용했고 제물 담는 그릇도 해마다 새것으로 장만하였지만 최근에는 제주의 집에 있는 것을 사용한다. 봉산마을에서는 동제 날을 “큰 정신 드리는 날”이라고 부르며 제물을 장만할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음복할 수 있을 만큼의 양으로 장만하고 제례복은 흰색 한복으로 관대를 착용하여야 한다.
제례일 자정에 제상을 차리고 분향, 재배, 헌작[3회], 독축, 소지, 헌작, 재배한 후 파제하는데 소지 올리는 순서는 당신, 제주, 각 성씨별로 올리고 그 외 동네 안녕과 평안을 위해 올리는데 신당에는 제주와 유사 이외에는 일반인의 참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웃뜸[봉산]의 제삿날[1월 1일과 7월 1일]은 마을 입구 상당산님[느티나무]께 제사상을 차려서 드리고는 그 제상을 아래뜸의 조산이 있는 하당산님 제단에 옮기지 않고 남쪽[하당]으로 상을 약간 돌려놓고 그대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아래뜸[원황정]의 제삿날[12월 31일과 7월 2일]에는 제주가 웃뜸의 상당산님을 모시는 제단에 가서 진설하여 먼저 지내고 다시 별도 준비한 제물로 자기 마을에 있는 하당산인 조산이 있는 제단에 와서 진설하여 제사를 정식으로 두 번 지내는 것이 다르다.
제물의 경비는 마을 주민들에게 공동 부담을 지우는 것이 보편적인 원칙이다. 그렇지만 황정리의 윗뜸과 아래뜸은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산을 가지고 있어 산림 벌채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기금으로 조성해서 사용하고 별도로 거출을 하지 않았다. 또 제관으로 선출된 주민은 금기 사항들이 너무 많아 제관이 되려는 것을 모두 거절하여 제관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의 하나로 제주가 일 년 동안 동답을 무료로 농사짓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축문]
예전에는 동제 축문이 있었다고 하나 근년에는 독축을 생략하고 소지하는 것으로 대신하여 축문이 전하지 않는다. 제주는 소지를 올릴 때 먼저 당신님 소지를 올리고 다음으로 제주 자신의 소지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주민들의 성씨와 특별한 내용을 신에게 고하는 것으로 한다.
[현황]
황정리 봉산 동제는 일 년에 1월과 7월에 두 번씩 지내왔는데 웃뜸이라 불리는 봉산마을은 상당과 하당으로 나누어 신당은 같은 제단을 통하여 모셔지고 있었다. 즉 상당의 느티나무와 하당의 남신과 여신을 상징하는 2개의 조산을 두고 동제를 올렸는데 일 년에 두 번의 동제를 드림에 따라 마을에 일어날 수 있는 유행병, 홍수, 가뭄, 천재지변 등의 변고가 이 마을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었다. 마을 총회는 동제를 지낸 해당 주민이 모여서 하지만 음복은 웃뜸, 아래뜸 구분 없이 모두 참석하였다. 아주 옛날에는 농악을 울리며 서로 어우러져 즐기고 정월 제사 때는 별신굿도 하였다고 하는데 1980년을 끝으로 더 이상 동제를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