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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금강문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652
한자 直指寺金剛門-
영어음역 ikjisa Geumgangmun Iyagi
영어의미역 The Story of Geumgangmun Gate, Jikjisa Temple
이칭/별칭 직지사 금강문의 유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집필자 이균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1983년연표보기
수록|간행 1999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연기담
주요 등장 인물 승려|촌장|부인|고승
모티프 유형 금강문이 건립된 이유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서 금강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직지사 금강문 이야기」는 헤어진 남편을 만나려고 전국의 사찰을 모조리 찾아다니다가 직지사에 쓰러져 죽은 부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금강문이 건립된 연유에 관한 연기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직지사 금강문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지명유래 및 설화]에는 「직지사 금강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내용은 동일하다.

[내용]

옛날에 떠돌이 승려가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경상남도 합천 어느 곳에 도착하였는데, 그 마을은 예로부터 대처승 마을로 촌장이 그를 보는 순간 사람 됨됨이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 사위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비구승(比丘僧)이라며 한사코 결혼하기를 반대했으나 바랑과 승복을 빼앗고 강제로 결혼시킨 뒤 신랑 승려가 도망칠까봐 장삼과 바랑을 깊숙이 숨겨 두었다. 아들을 낳고 살기를 삼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장삼과 바랑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다음날 아침 부인이 눈은 뜨니 옆자리에는 남편이 없었다.

그 후 부인은 남편을 찾아 전국의 사찰을 모조리 찾아다녔으나 허탕이었다. 어디선가 그와 비슷한 승려가 직지사로 갔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에 찾아가 그가 장계다리 아래 방앗간 집에 묵고 있음을 알고 그 집에서 기다렸다. 사흘이 넘도록 오지 않자 부인은 남편을 찾아 직지사로 들어가다가 일주문을 지나 지금의 금강문 자리에 이르러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어 버렸다.

그 후 부인이 죽은 날이 되면 매년 직지사의 승려들이 누가 부른 듯이 쫓아 나가 부인이 죽은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갔다. 이에 직지사에서는 부인의 원귀를 위로하고자 그 옆에 사당을 짓고 그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올렸다. 어느 해 이름 있는 고승이 찾아와 사찰 안에 사당이 웬 말이냐고 나무라니, 승려들은 사당을 세우게 된 사유를 얘기했다. 그러자 고승은 “그러면 이곳에 금강문을 지어 금강역사로 하여금 여인의 원혼을 막도록 하라.”고 하여 지금의 금강문이 세워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직지사 금강문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금강문이 건립된 이유’이다. 「직지사 금강문 이야기」는 원혼을 달래기 위한 사당을 대신하여 금강문을 세우고 금강역사로 하여금 원혼을 막았다는 내용은 민간 신앙보다는 불교의 권위가 우위에 있음을 보여 주는 연기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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