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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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掛鞭岩-投甲淵 |
영어음역 | Gwaepyeonamgwa Tugabyeon |
영어의미역 | Gwaepyeonam Rock and Tugabyeon Pond |
이칭/별칭 | 이약동의 괘편투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
집필자 | 이균옥 |
수록|간행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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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 1999년 |
관련 지명 | 경상북도 김천시 양금동 |
채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양금동 |
성격 | 전설|지명 유래담|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이약동|이선|이연 |
모티프 유형 | 채찍 모양이 새겨진 바위|갑옷이 던져진 바다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양금동에서 괘편암과 투갑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괘편암과 투갑연」은 채찍 모양이 새겨긴 괘편암(掛鞭岩)과 갑옷이 던져진 바다라는 투갑연(投甲淵)에 대한 암석 및 지명 유래담이자,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청백리 이약동(李約東)을 기렸다는 인물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이약동의 괘편투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지명유래 및 설화]에는 「괘편암과 투갑연」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둘의 내용은 동일하다. 그런데 이 둘에는 이약동의 후손들이 이약동의 청렴 정신에 해를 끼치는 실수담이 추가되어 있다.
[내용]
하로에 살던 평정공(平靖公) 이약동이 제주목사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의 이야기이다. 재임 기간에 쓰던 관물인 관복이나 물건들을 정리하여 모두 관청에 두고 떠났는데, 말을 타고 나루터까지 오다가 문득 손에 쥐고 있는 말채찍이 제주도의 관물임을 깨닫고 되돌아가 그 채찍을 성벽 바위에 걸어 놓고 다시 떠났다.
공의 수행원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바다 중간쯤에 이르러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 곧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다. 배에 탄 일행은 어쩔 줄을 모르는데, 공은 태연히 “우리 일행 가운데 혹시 섬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만약 섬 물건을 가져오다가 여기서 불행한 일이라도 생기면 뒷날 섬사람들이 탐관이라고 죽은 뒤에도 욕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비장이 아뢰기를, “섬에서 떠나올 때 섬사람들이 금 갑옷 한 벌을 주면서 배를 타기 전에 사또님께 바치면 물리치실 것이니 배에서 내린 다음에 드리라 하여 가져왔습니다.” 하였다. 공은 웃으면서 그 정성은 고맙다 하고 갑옷을 바다에 던지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곧 풍랑이 가라앉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왔다.
제주도 사람들은 공의 청백과 선정을 기념하여 성벽에 걸어 둔 말채찍을 그대로 걸어 두고 보존하였더니, 오래되어 썩은지라 그 자리에 채찍 모양을 돌에 새겨 그 바위를 ‘괘편암’이라 부르고, 또 갑옷을 던진 바다를 ‘투갑연’이라 하였다. 공의 청렴을 기리기 위하여 제주도민은 ‘생사당’을 지었는데, 산 사람을 위해서 사당을 짓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다.
그런데 후손이 바르게 받들지 못하고 공의 청백에 오류를 끼쳤다. 숙종 원년에 부호군 이선(李選)이 제주를 순무하고 돌아와 제주의 40가지 폐단을 왕에게 보고한 가운데, 3현[김정(金淨), 김상헌(金尙憲), 정온(鄭溫)]을 제사하는 서원에 제주목사 이연이 그의 조부 이약동의 위판을 사람들과 상의도 없이 3현 윗자리에 배향하여 3현을 욕되게 하였다고 고했다. 이에 왕이 철거하도록 했는데, 만약 이약동이 지하에서 안다면 청렴의 정신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크게 꾸지람을 하였을 것이다.
[모티프 분석]
「괘편암과 투갑연」의 주요 모티프는 ‘채찍 모양이 새겨진 바위’, ‘갑옷이 던져진 바다’ 등이다. 「괘편암과 투갑연」은 암석과 지명의 유래담이면서, 이와 관련된 이약동의 청렴한 행적과 그 후손들이 이약동의 청렴한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내용의 인물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