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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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壬辰倭亂 |
영어음역 | Imjinwaeran |
영어의미역 | Novel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집필자 | 박승희 |
저자 생년 | 19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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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 1957년 |
저자 몰년 | 1981년 |
성격 | 역사 소설 |
작가 | 박종화 |
[정의]
1957년 박종화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쓴 대하 역사 소설.
[개설]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1901~1981]가 1954년 9월 13일부터 1957년 4월 18일까지 총 946회로 『조선일보』에 연재한 당시 우리 소설사상 가장 긴 장편 소설이다. 『임진왜란』에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일대에서 벌어진 김산 전투가 소개되어 있다. 작품의 서설에서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듯이 6·25전쟁 직전 정부 수립 후의 혼란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은 당쟁으로 인한 집권층의 분열과 이합 집단 식으로 표류하는 국론만이 난무하는 정쟁의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기만당하고 외세에 대한 저항 체제는 전혀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전쟁이 나자 응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도를 버려야 했던 당시의 상황과 6·25전쟁은 그대로 닮은꼴이다. 박종화는 이렇듯 6·25전쟁과 임진왜란의 두 전쟁을 동일 선상에 두고 파악함으로써 역사 소설 『임진왜란』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 보여 주고자 하였다.
[내용]
소설 『임진왜란』 중에는 추풍령 싸움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황간의 의병대장 장지현(張智賢)은 천여 의병을 거느리고 추풍령에 당도하여 관군 백여 명을 통솔하고 있는 방어사 조경(趙儆)과 기병 30명으로 거창에서 왜적 5백을 무찌른 청년대장 정기룡(鄭起龍)과 합세하여 김산벌에 포진하고 제3로 추풍령을 넘으려는 왜적 5만 대군을 맞아 추풍령에서 접전키로 했다. 호피(虎皮)를 씌운 황소 꼬리에 불을 붙여 적진에 돌진시키는 등 신출귀몰의 전략에 시달리던 적병이 인해전술로 5만 명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통에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특징]
『임진왜란』은 『조선일보』에 전 946회가 연재됨으로써 당시 우리 소설사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는 가장 긴 장편으로서의 기록을 세웠다. 박종화는 『임진왜란』의 서설에서 “3백 년 전에 우리 조상이 겪은 ‘임진왜란’은 3백 50년 뒤 오늘날 우리의 겨레 모두가 당하고 겪은 비참한 전쟁 ‘한국의 동란’과 방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그는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 민족 사상에 일대 수난(一大受難)이었던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면서 침략자와 우리와의 사이에 벌어지는 선악의 대결을 대하 소설로 엮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상징으로 ‘이순신’, ‘계월향’, ‘논개’ 등 세 주인공을 민족적 영웅으로서 세우고 그들의 호국 정신(護國精神)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은 1950년대 전후의 피폐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다. 박종화는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고 임진왜란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6·25전쟁의 발생 배경과 그 과정에서 부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들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그는 당쟁으로 인한 지배 계층의 분열과 임진왜란의 비극성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6·25전쟁과 관련지어 각성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더불어 이순신과 같은 인물을 민족의 영웅으로 강조함으로써 전란의 혼돈 속에서 지배 계층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밝히고, 그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