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12 |
---|---|
한자 | 金洗榮 |
영어음역 | Gim Seyeong |
이칭/별칭 | 세심(洗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철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사업가.
[활동 사항]
김세영(金洗榮)[1920~2010]은 호는 세심(洗心)이며, 본관은 함녕(咸寧)이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9년 김천중학교를 제4회로 졸업하였다.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소재 함태탄광을 경영하였다. 그 뒤 대한석탄협회 및 대한광업회 이사와 가야산업주식회사 및 근해상선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53년 김천중학교[현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가 사립으로 전환되었는데, 6·25전쟁 직후인 탓에 건물이 거의 부서져 학생들은 나무 그늘이나 노천에서 수업을 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수업료는 인건비로 나가고 학교 운영 유지비는 5%에 불과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교실 신축은 물론, 수리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1956년 학교는 은행에 3000만 원, 일반에 2000만 원[당시 교직원 평균 월급 약 5만 원]을 빚져 송설학원이 존망의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무렵 송설학원의 재기에 힘쓰던 제3대 김종호 재단이사장과 김천의 유지 몇 사람이 김천중학교 졸업생 김세영을 찾아가, 학교가 재정적으로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였음을 알리고 재단 이사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김세영은 거듭 사양하다가 김종호 재단 이사장의 설득에 재단 이사장직을 수락하였다.
이로써 1957년 1월 20일 송설당교육재단 제4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김세영은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학교의 빚부터 청산하였다. 그리고 사재를 투입하여 서산 염전을 농지로 개발한 약 1.39㎢의 땅을 재단 재산으로 마련하였고, 30개 교실도 증축하였다. 이렇듯 학교 운영비, 교사 신축 및 보수비 등에 해마다 막대한 성금을 내어 학교 운영을 재정적으로 안정되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장학 사업에도 정성을 쏟아 세심장학회를 설립하여 10년간 330명의 수혜자를 내었고, 서울에 37년간 세심장학사를 운영하여 165명에게 4년간 대학 등록금과 숙식을 제공하였다.
이 같은 행동에 동문들은 김세영을 ‘제2의 송설당’이라고 칭송하였다. 하지만 김세영은 “나는 송설당 할머니 덕택으로 사업에 성공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마음으로 이사장직을 맡아 송설당 할머니가 남을 위하는 삶으로 평생을 일관하신 것과 같이 나도 그 같은 삶을 닮고자 하였으나 실로 송설당 할머니야말로 예사 소나무가 아니라 눈[雪]을 이고도 꿋꿋한 낙랑장송이셨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송설당에 비유함은 천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김세영은 “남을 위해 생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자신의 말처럼 그것을 평생 몸소 실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6년 3월 대통령 포상을 받았고, 1986년 3월 산업 포상을 받았다. 2007년 4월 7일 김천중학교와 김천고등학교 교정에 흉상이 세워졌다. 2010년 8월 김세영이 영면하자, 8월 13일 천한신이 영전에 「세심(洗心), 영원한 별이 되어」라는 시를 지어 받쳤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
그끄제 이른 아침, 잠깐 갠 하늘 아래에서
‘세~심, 세~심’
하고 매미가 운 것은
그때
가슴 한 편이 아릿하게 무너져 내리는 통각을 느낀 것은
아, 그것은
이분이 육신을 벗어버린 순간이었음을,
무심(無心)한 이 인간에게 세심(洗心)하라 외치신 마지막 음성이었음을,
이제야 이 못난이는 한 방울 눈물만 떨어뜨립니다.
이분
일찍이 세심득혜(洗心得慧)의 슬기로움을 지니셨기에
아흔 평생을
버리고 비우기
마음 씻기
남을 위해 생을 영위하기
이 쉽고도 어려운 진리를 몸으로 맘으로 행하셨기에
무심한 자, 탐욕으로 가득한 자, 이기심으로 마음을 닫은 자
아니, 버리지 못한 자 우리 모두는
앗!
뇌리 가득히 통타하는 죽비 소리를 느낍니다.
한창 시절, 이분의
그 묵언에 가까운 뜨거운 우렁우렁한 목소리
그 열렬한 생을 담은 형형(炯炯)한 눈빛에서
우리 송설(松雪) 학동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철학하고 몸으로 드러내 보인
어른의 참모습을 익혔습니다.
병상에 드신 후에도 그 눈빛은 형형하게 그러나 다사로이
‘세심(洗心)하라’ 묵언(黙言)하셨습니다.
아!
한 사람의 아비 됨도 어려운 일이거늘
뭇사람의 아버지 되신 분,
마음을 씻어
진정한 자유인이 된 분,
내것을 버리고 비워
다른 이의 삶을 채워 주신 분
이분이 오늘 육신을 벗어 하늘로 날아올라 별이 됩니다.
당신께서 씻고 비운 순백의 얼과 넋을 결어 영원히 빛나는 세심의 별이 됩니다.
오!
하늘님도 하늘 한 자락 내어 주시어
영겁의 평안을 함께 하소서
세인들이여,
매미가 세~심 세~심 하거든, 송설이 눈부시게 희거든,
어느 날 가슴 한 쪽이 지릿하거든
하늘의 저 별을 보라.
세심의 별을 보라.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