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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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尙化 |
영어음역 | Yi Sanghwa |
이칭/별칭 | 영은(嶺隱)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삼조 |
활동 | 172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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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산(星山)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영은(嶺隱).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이다. 아들로 효자인 이숙봉, 손자로 이용재·이용손을 두었다. 아들 이숙봉은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고 피를 입에 넣어 주어 어머니를 살렸으며, 어머니가 작고한 후 시묘할 때 호랑이가 보호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손자 이용재·이용손도 여름날 어머니 김씨의 종기 난 자리에 벌레가 생기자 입으로 빨아 벌레를 제거할 만큼 효성이 깊었다. 또한 어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주어 몇 년을 더 생존하게 하였고,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아버지처럼 호랑이가 보호해 준 일화가 있다. 삼대가 시묘하던 골을 시묘동이라 하고, 그 산을 효자산이라 불렀다.
[활동 사항]
이상화(李尙化)는 지금의 김천시 지례면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무신란[이인좌의 난]에 형 이세한(李世翰)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적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형제가 진주 군문(軍門)에 나아가 영장(營將)에게 자신들의 계책을 말하자, 영장이 계책에 따라 고갯길에 병사를 매복시켜 성초령(省草嶺)에서 적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죽만 먹으면서 시묘를 한 지극한 효자였다.
[상훈과 추모]
1788년(정조 12) 조정에서 특명으로 복호(復戶)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