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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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漢禎 |
영어음역 | Choe Hanjeong |
이칭/별칭 | 자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 문신.
[가계]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자경(子慶). 아버지는 최사로이다. 아들로 최중홍 등 다섯 명을 두었고, 증손자에 수우당 최영경이 있다.
[활동 사항]
최한정(崔漢禎)[1427~1486]은 1456년(세조 2) 생원이 되고, 1459년(세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과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463년(세조 9) 중시에 급제하였다. 사헌부헌납, 홍문관교리겸시독관, 춘추관기주관을 역임하였다. 왕의 신임이 두터워 권간 임사홍이 그가 늙어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으로 부적합하다고 말하였으나, 성종은 대꾸도 하지 않고 어필로 사간원대사간에 특배하였다. 이 일로 임사홍 일파가 위축되었고, 사림들이 통쾌하게 여겼다.
사헌부헌납에 있을 때 동료들과 간원도(諫院圖)[왕에게 바른말을 하는 신하의 그림]를 작성하였다. 성종이 포창하는 뜻으로 왕의 진영을 위에 두고 사간원대사간 성준, 사관 김영수, 사간원정언 하숙산·김계형·최한정 등 5명의 화상을 그려서 한 폭씩을 하사하였다. 이후 이조참의와 장예원판결사를 역임하였다. 1486년(성종 17) 음력 7월 28일 작고하여 장단(長湍) 산리동(酸利洞)에 장례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훗날 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이행(李荇)이 신도비명을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