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72 |
---|---|
한자 | 裵興立神道碑 |
영어음역 | Bae Heungnip Sindo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of Bae Heungri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황새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영 |
관련 인물 생년 | 1546년 |
---|---|
관련 인물 몰년 | 1608년 |
건립 | 1699년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황새마을 |
성격 | 신도비 |
관련 인물 | 배흥립|강백년|배정휘|허목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배흥립의 신도비.
[개설]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자는 백기(伯起),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배인범(裵仁範)이다.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중에 세운 공로로 무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공조참판이 되었다. 당시의 지휘관이던 이순신(李舜臣)이 장계(狀啓)에서 권준(權浚), 이순신(李純信), 정운(鄭運)과 더불어 해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 일컫고 논공행상할 것을 조정에 품의하였다. 인조 때 원종공신·병조판서·좌찬성이 추증되었고, 효종 때 정려가 내려졌으며, 1699년(숙종 25)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대방곡 묘소 아래에 신도비가 세워졌다. 순조 때 삼강사(三綱祠)에 배향되었고, 한산도 승전비에 공적이 기록되고 부조지전이 내려졌다.
[위치]
배흥립 신도비는 송죽리 황새마을을 지나 좁고 길게 뻗친 골짜기를 따라 걸어서 20여 분 남짓 떨어져 있는 배흥립의 묘소 아래 약 50미터 떨어진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황새마을은 풍수지리로 볼 때 주변 산의 형세가 황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형태]
몸돌과 머릿돌을 갖추었고 받침돌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금석문]
배흥립 신도비 비문은 청백리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문신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지었고, 글씨는 배정휘(裵正徽)[1645~?), 전자(篆字)는 기호 남인의 선구이며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된 허목(許穆)[1595~1682]이 썼다. 서체는 해서체이다. 내용은 배흥립의 선조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여 배흥립의 효성스러운 성품에 관련된 일화를 기술하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함께 분투하여 세운 공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비문 후반부는 배흥립의 후손에 대한 내용이다.
[현황]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안새래마을에 배인범 처 경주 김씨, 임란공신 효숙공 배흥립, 병자호란 때의 공신인 충숙공 배명순 등 3대를 기리는 배흥립 삼대 삼강 정려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