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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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直指寺事蹟碑 |
영어음역 | Jikjisa Sajeok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Inscribed with History of Jikjisa Temp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겸 |
관련 인물 생년 | 163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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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 1637년 |
관련 인물 몰년 | 1690년 |
관련 인물 생년 | 1693년 |
건립 | 1741년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성격 | 사적비 |
관련 인물 | 조종저|낭선군 |
재질 | 돌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419㎝[총높이]|119.9㎝[너비] |
소유자 | 직지사 |
관리자 | 직지사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건립 경위]
직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능여대사가 활동하여 고려 태조가 대찰로 창건하였다. 이곳에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자한 비가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 학조(學祖)가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을 때 중창하였다. 직지사 사적비는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쓰고 낭원군(朗原君)이 전액을 썼다. 1681년에 비를 새기다 완성하지 못한 것을 1741년에 다시 완성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직지사 사적비는 직지사 일주문에 도달하기 전 근처 초입 길가 언덕에 있으며, 주위에는 돌담이 둘러져 있다.
[형태]
거북 모양의 받침돌에 비를 세웠다. 서체는 해서체이다. 총 높이는 419㎝이다. 몸돌 높이는 239.2㎝, 가로 119.9㎝, 폭은 30.3㎝이다. 용머리 높이는 115.2㎝, 거북 받침돌 높이는 108.1㎝이다.
[금석문]
직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능여대사가 활동하여 태조가 대찰로 창건하였고 왕희지 글씨를 집자한 비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조선에 들어서는 학조(學祖)가 세조의 우대를 얻어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은 것을 인수 등이 70년에 걸쳐 3백 여 칸의 중창을 이룩한 사실을 적었다.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朗善君)이 쓰고 낭원군(朗原君)이 전액을 썼다. 후면에는 1681년에 비를 새기다 완성하지 못한 것을 1741년에 다시 완성하여 건립하였음을 기록하였다.
전면은 단정한 해서체로 썼으며, 후면에는 건립에 관련된 사람들을 질서 정연하게 열지어 차례로 기록하였는데 본사의 수많은 승려 이름과 각전, 각방, 각암으로 나누어 절의 형세를 기록한 것이 주목된다.
[현황]
현재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돌담을 쳐서 관리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전후면의 글씨를 거의 판독할 수 있다. 전면과 후면의 탁본이 『한국금석문대계』 권3 등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