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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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泰里古城 |
영어음역 | Otae-ri Goseong |
영어의미역 | Otae-ri Old Cast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원종 |
성격 | 성곽|산성|토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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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백제 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개설]
흥덕면은 본래 백제 상칠현이었는데, 상칠현의 치소지가 흥덕면 오호리 오태동에 있는 오태리 고성으로 보인다. 상칠현은 신라 경덕왕이 상질이라 하여 고부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후에 장덕현으로 고쳤으나 충선왕이 1308년(충선왕 1) 즉위하자 창덕으로 고쳤고, 다시 창왕 때에는 창왕과 이름이 같아 흥덕으로 고쳤다.
오태리 고성에 대한 기록은 흥덕읍성과 관련하여 문헌에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흥덕현 고적조에 "오태리 고성은 현의 서쪽에 있다[吳泰里古城在縣西]."라고 되어 있고,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오태리 고성은 읍지에 현의 서쪽 3리에 있다[吳泰里古城邑誌在西三里].’라 하고 있으며, 『대동지지』 11권에서는 "오태리 고성은 성의 서쪽 15오태리성서15리(吳泰里城西15里)’라고 전하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오태리 고성에 대한 내용이 신빙성이 떨어지고, 위치도 원래 있었다고 전하는 곳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헌 기록이 전해져 오면서 오기(誤記)되었거나 불확실한 사실을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태리 고성이 흥덕읍성의 서쪽에 있었음은 확실하다.
[위치]
오태리 고성은 흥덕면소재지에서 교운리 서문마을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가다 서쪽으로 향하면 오호리 오태마을에 이르고, 마을의 북쪽과 동쪽을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구릉에 해당된다.
[형태]
오태리 고성은 오태마을 북쪽 구릉에 해당되는데, 이 구릉은 해발 30m 내외로 동서 방향으로 흐르며, 형태는 눈썹 모양을 하고 있다. 오태마을 남쪽에 형성된 신조산마을에 이르기까지 능선이 동남쪽으로 이어지다가 동남쪽 모서리 쪽의 봉우리[해발 66m]를 중심으로 다시 신조산을 향해 서쪽 방향으로 감싸고 있는 형태로 추정된다. 따라서 오태리 고성은 서쪽 방향이 터지고 세 방향을 능선이 감싼 토성이라고 판단된다.
[현황]
오태리 고성은 토성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최근에 오태마을 남쪽에 흥덕농공단지가 조성되었는데, 그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발굴 조사에서 오태리 고성과 비슷한 연대의 유적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 당시에 오호리 신지매 유적에서는 백제 시대 굴식 돌방무덤 6기가 조사되었다. 돌방무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모두 할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또한 돌방 내부에서는 광견호, 병형토기, 뚜껑접시 등 다양한 백제 토기가 확인되었다.
3호 돌방무덤에서는 백제 시대 청동 인장이 출토되었는데, 인면은 한 변의 길이가 약 2.5㎝ 내외의 정방형이며, 상부에는 고리형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인장에 새겨진 글씨는 부식이 심하여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의장군지인(□義將軍之印)’ 등 7자 정도가 새겨진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오태리 고성은 백제 상칠현의 치소성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후기에서 조선시대까지 흥덕읍성의 축성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치소이다. 흥덕농공단지 조성 공사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백제 시대의 굴식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는데, 출토 유물 중 ‘장군’의 청동 인장은 백제의 지방 통치 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