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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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巖里磁器所 |
영어음역 | Deogam-ri Jagiso |
영어의미역 | Deogam-ri Ceramic Fac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소(所)는 고려 시대 있었던 말단 행정구역의 하나로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한다. 주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광물이나 수공품의 생산을 맡아 하던 곳이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 은소(銀所), 동소(銅所), 철소(鐵所), 사소(絲所), 주소(紬所), 지소(紙所), 와소(瓦所), 탄소(炭所), 염소(鹽所), 묵소(墨所), 곽소(藿所), 자기소(瓷器所), 어량소(魚梁所), 강소(薑所), 다소(茶所), 밀소(蜜所) 따위가 있었다.
발생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향·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과 달리 고려 시대에 들어와 공물(貢物)의 확보를 위해 정책적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는 일반 군현과 구별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군현이 관할하는 일반 촌락 가운데 자연적·사회적 입지 조건에 따라 특정 물품의 생산에 유리한 촌락을 국가에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부터 해체되기 시작하여 조선 전기에는 전국적으로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향·부곡과 함께 군현으로 승격하거나, 직촌(直村)이 되면서 없어졌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고창현조에 "소(所)가 둘이니, 도성(陶城)·덕암(德巖)이다[所二陶城德巖]."라는 기록과, "자기소가 하나이니, 현의 서쪽 덕암리(德巖里)에 있고, 중품이다[磁器所一在縣西德巖里品中]." 라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에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덕암리 자기소는 고창군에 속해 있던 소의 하나로 덕밀(德密)이라고도 하였다. 현의 북쪽 29리[약 12㎞]에 있었고 도자기를 생산하였는데 자기의 품질은 중간 정도였다. 덕암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최씨가 있다.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에 “현의 북쪽 29리에 있고, 덕천(德川)에 덕암소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창에서 덕천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곳으로는 대산면 덕천리와 아산면 용계리 원평에 있는 덕천사(德川祠)가 있다. 그러나 대산면은 고창 남쪽에 있고, 본래 무장현 지역이므로 관련이 적을 것이로 보이며, 아산면 용계리의 덕천사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문헌 기록을 입증이라도 하듯 현재 아산면 용계리 산22번지에 사적 제345호로 지정된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가 있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터로 선암사 방면 중간 지점인 용계마을에서 위쪽 운곡저수지 중상류에 걸쳐 있다. 11세기 초 초기 청자를 제작하다가 11세기 말경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일대의 요지군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용계리 동쪽으로 아산면과 부안면의 경계를 이루는 화시봉[403.2m]이 솟아 있고, 화시봉 동쪽 고성봉(古城峯)이라 일컫는 곳에 서산산성(西山山城)이 있었다는 기록, 「해동지도」에 이서면 왼쪽에 고성봉이 표시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덕암리 자기소는 용계리 일대에 있던 요지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