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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동 자기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37
한자 輪峴洞磁器所
영어음역 Yunhyeon-dong Jagiso
영어의미역 Yunhyeon-dong Ceramic Fac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시행처 국가

[정의]

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소(所)는 고려 시대 있었던 말단 행정구역의 하나로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한다. 주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광물이나 수공품의 생산을 맡아 하던 곳이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 은소(銀所), 동소(銅所), 철소(鐵所), 사소(絲所), 주소(紬所), 지소(紙所), 와소(瓦所), 탄소(炭所), 염소(鹽所), 묵소(墨所), 곽소(藿所), 자기소(瓷器所), 어량소(魚梁所), 강소(薑所), 다소(茶所), 밀소(蜜所) 따위가 있었다.

소의 발생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향·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과 달리, 고려 시대에 들어와 공물(貢物)의 확보를 위해 정책적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는 일반 군현과 구별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군현이 관할하는 일반 촌락 가운데 자연적·사회적 입지 조건에 따라 특정 물품의 생산에 유리한 촌락을 국가에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부터 해체되기 시작하여 조선 전기에는 전국적으로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향·부곡과 함께 군현으로 승격하거나, 직촌(直村)이 되면서 없어졌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흥덕현조에 "도기소가 둘이니, 모두 현의 서쪽 윤현동(輪峴洞)에 있다[陶器所二皆在縣西輪峴洞]."라고 기록되어 있다. 『점필재집(佔畢齋集)』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흥덕현에는 도기소가 두 곳 있었는데, 모두 현의 서쪽 윤현동(輪峴洞)에 있었고 자기의 품질은 나쁘다고 하였다. 한편,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인 『점필재집』 시집 21권에 “7월 25일에 흥덕현의 문을 나와서 큰비를 만났는데, 윤현을 지나자 골짜기 물이 모두 말의 배까지 차오르므로 마침내 물에 막혀서 안덕사를 찾아가 묵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안덕사는 『여지도서(輿地圖書)』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화시산(火矢山)[화시봉] 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안덕사는 아산면 운곡리에 터만 남아 있다. 안덕사의 창건 연대와 폐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표상에 흩어져 있는 토기 조각이나 기와 조각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윤현동흥덕에서 아산면 운곡리 안덕사가 있던 골짜기 사이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현황]

문헌에 나오는 흥덕의 서쪽은 지금의 부안면 지역으로, 현재 부안면 수동리 산11번지부안면 용산리 용흥마을에 가마터가 있다. 수동리 일대는 조선시대에 이웃한 고부군 영역이었으므로 윤현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용산리는 조선시대에 흥덕현 이서면 지역이었다가 1935년 부안면에 편입되었으므로 윤현동 자기소로 추정할 수 있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용산리 용흥마을 가마터가 있는 건지봉(乾止峰) 아래 구릉지에는 3기의 청자 가마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지형이 바뀌어서 가마터를 확인할 수 없고 다만 청자 조각들만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용산리 용흥마을에 윤현동 자기소가 있었으리라 추정할 뿐 정확한 현재 위치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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