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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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利川徐氏 |
영어음역 | Icheon Seossi |
영어의미역 | Icheon S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집필자 | 송만오 |
세거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우평리|고창읍 율계리|해리면 방축리|고창읍 덕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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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율계리 |
입향시기/연도 | 1400년대|1600년대 |
성씨시조 | 서신일 |
입향시조 | 서적|서욱 |
[정의]
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적·서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원]
이천서씨는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한다. 서신일은 모든 서씨의 도시조로 기자(箕子)의 40대손인 기준(箕準)의 후손이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인 기준이 9세기 중엽 위만(衛滿)에게 쫓겨 지금의 이천 땅 서아성(徐阿城)에 정착한 것이 서씨의 시초라고 전한다.
[입향경위]
이천서씨 고창군 입향조 서적(徐積)은 상서공파(尙書公派)로 병부상서를 지낸 서린(徐鱗)의 현손이며 이조참판을 지낸 서호(徐顥)의 손자로 1450년(문종 즉위년)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에서 태어났다. 모양윤씨(牟陽尹氏) 윤억(尹億)의 사위가 되어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고창군 고수면 우평리 양지동(陽支洞)으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무송(茂松) 서욱(徐旭)은 절효공파(節孝公派)로 판서를 지낸 서효환(徐孝寰)의 7대손으로 1602년(선조 35) 광주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화를 피해 고창군 해리면 방축리(防築里)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이후 서욱의 증손인 절충장군 서후식(徐後湜)이 1728년(영조 4) 박필현(朴弼顯)의 난으로 큰 화를 입으면서 방축리에서 고창읍 덕산리 백양(白羊)으로 이거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서적의 4대손 서후장(徐後長)이 고창군 신촌(莘村)에 있는 광산김씨 집안의 사위가 된 것을 계기로 후손들이 고창읍 율계리(栗溪里)로 옮겨와 10대를 이어 오고 있으며 고수면 남산리 잠곡, 고수면 우평리 독실 등지에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서욱의 후손들이 고창읍 덕산리 백양, 해리면 광승리 외경(外景) 등지에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이천서씨는 1가구에 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