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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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斗南 |
영어음역 | Gim Dunam |
이칭/별칭 | 이헌(以憲),청계(淸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 임해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기화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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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 임해마을 |
성별 | 남 |
생년 | 1554년 |
몰년 | 1593년 |
본관 | 김해 |
대표관직 | 금부도사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헌(以憲), 호는 청계(淸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김헌(金軒)이다.
[활동사항]
김두남(金斗南)은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헌이 행재소로 달려가 근왕(勤王)의 대열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직산(稷山)에서 왜적을 만나 싸우다 부상하여 불구의 몸이 되자, 아우 김지남(金志南)과 함께 백부 김축(金軸)이 일으킨 의병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후 곰티재[熊峙]와 배티재[梨峙] 싸움에서 용전분투하여 승리를 거두고 권율(權慄)에게 인정되어 참좌(參佐)로서 행주산성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어 진주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백부를 따라 김천일 휘하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1593년 6월 29일 중과부적으로 밀리자, 백부 김축을 따라 남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 2등훈으로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과 『단서철권(丹書鐵券)』을 받았다. 금부도사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