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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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鎭龍 |
영어음역 | No Jinyong |
이칭/별칭 | 경희(景羲),성재(誠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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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 |
성별 | 남 |
생년 | 1894년 11월 6일 |
몰년 | 1950년 8월 27일 |
본관 | 함평 |
[정의]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경희(景羲), 호는 성재(誠齋)이다. 1894년 11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노진룡은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를 조직하여 총지휘 감독이 되었다. 당시 감독부에는 부감독 오의균(吳毅均), 재무 황종관(黃鍾寬)·이휴열(李休烈), 고문 강대직(姜大直)·이석렬(李錫烈)·나홍균·이종택(李鍾澤)·이강열·신용수(愼鏞秀)·이처환·이봉헌·김양평·백낙일과 통신원 박기동 등이 있었다. 이들은 수년 동안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1922년 5월 노진룡은 노진문(魯鎭文)·김성균(金聲均)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1923년 3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0년 3월 1일 군민들이 성내면 양계리에 대한독립운동사적비를 세워 감독부 일원들의 공적을 새겼다. 1980년 건국포장 애국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