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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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達 |
영어음역 | Gim Yeongdal |
이칭/별칭 | 달병(達炳),영심(永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희 |
성격 |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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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 |
성별 | 남 |
생년 | 1852년 |
몰년 | 1894년 |
본관 | 김해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영심(永心)이다. 영달(永達)은 초명으로 호적에 오른 이름이다. 족보에는 달병(達炳)으로 되어 있다. 185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전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 2등으로 녹훈된 김지남(金志南)의 10세손이다.
[활동사항]
김영달은 어린 시절 원촌 사는 김흥섭(金興燮)[전봉준(全琫準)의 수행원]과 서당에서 동문수학하였다.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자 농민군 창의소와 영광 농민군 간의 문서 연락의 임무를 띠고 황아장수[끈목, 담배쌈지, 바늘, 실, 그 밖의 온갖 잡살뱅이의 물건을 지고 집집이 찾아다니며 파는 사람]로 변장하고 문서 송달과 정보 수집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2차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자 김영달은 무장 구수내[九水川] 출신으로 영광 지역을 맡은 송문수(宋文洙)를 따라 영광, 무장 지역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퇴한 후 송문수와 함께 서부 퇴로를 따라 후퇴하여 영광에 이르렀다가 민보군에 붙잡혀 영광 관아 앞 네거리에서 그 해 12월 27일 참수되었다. 현재 무장면 강남리 석수마을 후록에 부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