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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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敬七 |
영어음역 | Choe Gyeongchil |
이칭/별칭 | 월포(月浦),귀환(貴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문병학 |
성격 |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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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
성별 | 남 |
생년 | 1861년 |
몰년 | 1946년 |
본관 | 경주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월포(月浦), 본명은 귀환(貴煥)이다. 경칠(敬七)은 자이다. 1861년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최경칠은 9척 장신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하는데,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머슴의 등에 업혀서 서당에 다닐 정도로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었다고 한다. 34세에 동학 농민 혁명을 맞은 최경칠은 같은 마을에 사는 송문수(宋汶洙)·송경수(宋景洙) 형제와 고순택(高舜澤) 등과 함께 농민 봉기에 참여하였다. 위임장을 지니고 있다가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무장에서 접주급 이상의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최경칠이 말을 타고 다녔다는 후손의 증언으로 미루어 농민군의 기마부대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농민 전쟁 당시 지속적인 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