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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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山祠 |
영어음역 | Insansa |
영어의미역 | Insan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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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를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개설]
인산사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사우로서, 숙종 때에 예산(禮山) 대흥(大興)의 이약수(李若水) 묘 아래에 사우를 세우고 춘추향사(春秋享祀)를 하였는데,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0년에 자손이 세거하는 이곳에 규모를 갖추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약수(李若水)의 자는 지원(止源), 호는 우천(牛泉)으로, 이집(李集)의 후예인 이자(李滋)의 아들로 1486년(성종 17) 광주(廣州)에서 출생하였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천품(天稟)이 정직하고 의리가 고명(高明)하였으며, 학문에 독실(篤實)하고 효우(孝友)가 지극했다. 성수침(成守琛), 서경덕(徐敬德) 등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1510년(중종 5)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19년(중종 14)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에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조광조의 무죄를 호소하자 중종이 진노하여 평해(平海)로 유배되었다가 예산(禮山)으로 이배되어 대흥(大興) 적소(謫所)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조 초에 조광조 등과 함께 복권되었다.
[위치]
인산사는 사반마을 앞길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맨 서쪽 길가에 위치해 있다.
[변천]
1950년에 중건하여 여러 번의 증·개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내외삼문과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