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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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寧金氏三綱閭 |
영어음역 | Geumnyeong Gimssi Samgangnyeo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Geumnyeong Gim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447-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주명준 |
성격 | 충신|열녀|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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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정려비각|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83년 |
정면칸수 | 2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447-3 |
소유자 | 김녕김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에 있는 개항기 김녕김씨 가문의 정려 비각.
[개설]
김세웅(金世雄)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김경우(金景佑)를 따라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창의하여 의주에서 적 10급(級)을 베고 전사함에 따라 조정은 김세웅에게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를 증직하였다.
김세웅의 처 청주한씨(淸州韓氏)는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한임여(韓霖汝)의 딸로서 남편이 나라를 위해 순사하자 7일 만에 죽었다. 조정에서는 청주한씨에게 영인(令人)을 증직하였다.
김기석(金器碩)은 김세웅의 7세손이다. 천성이 지효(至孝)하여 부친이 병을 앓게 되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기도하였으며, 부친이 운명하려 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부친 입에 넣어 수일간 명을 연장하게 하였다. 또한 모든 일에 예의범절을 지켰고,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김기석은 모친상 때도 부친상 때와 똑같이 여묘살이를 하였는데, 1883년(고종 20)에 나라에서 김세웅에게 동몽교관조봉대부를 증직하고 김세웅과 처 청주한씨 및 김기석에게 삼강려를 명하였다.
[위치]
고창읍에서 대산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면 사내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포동마을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 앞에는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고 뒤로는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김녕김씨 삼강려는 포동마을 앞에 있는 모정을 지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1893년(고종 30)에 건축된 뒤 1941년에 신축되었다.
[형태]
김녕김씨 삼강려는 협문과 삼강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려각은 정면 2칸[각 214㎝], 측면 1칸[245㎝]에 팔작지붕이며, 내삼문은 맞배지붕이다. 하얗게 칠한 벽돌담이 둘러 있다. 시멘트 블록 담당으로 구획된 대지에 낮게 기단석을 두르고 그 위에 원형주초를 놓았다.
주초 위의 아랫부분에 돌로 두리기둥을 세웠고, 윗부분에 나무로 두리기둥을 세웠다. 창방과 장여 사이에 화려하게 꽃문양을 끼워 넣었다. 공포는 꽃문양을 새긴 이익공 양식이다. 네 벽을 홍살로 처리하였고 단청은 전체적으로 화려하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개량기와를 얹었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충신 증 동몽교관 조봉대부 김세웅지려(忠臣贈童蒙教官朝奉大夫金世雄之閭)’, 왼쪽에는 ‘동몽교관 조봉대부 김기석지려(童蒙教官朝奉大夫金基碩之閭)’, 오른쪽에는 ‘동몽교관 조봉대부 김세웅 처 영인청주한씨지려(童蒙教官朝奉大夫金世雄妻令人清州韓氏之閭)’라 쓰여 있다.
[현황]
보존은 좋은 편이다.
[의의와 평가]
한 집안에서 충신과 열녀와 효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