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0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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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海里山神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of Donghae-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동해리 |
집필자 | 조훈성 |
성격 | 산신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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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매년 음력 10월 3일 |
의례장소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동해리 태화산 |
신당/신체 | 산신당|산신도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동해리 태화산에서 음력 시월 초사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동해리(東海里)의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까지 와룡동(臥龍洞)이라 불리던 마을이 지금의 동해리로 바뀌었는데, 풍수적으로 동해리에는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용에게는 물이 있어야 하므로 이곳을 지나던 무학대사가 동해의 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여 그 후부터 마을을 동해리라고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동해리 산신제 비용은 동계(洞契) 기금 일부를 사용하며, 부족한 제비는 마을을 돌며 걸립한다. 동해리 주민들은 공동으로 돈을 걷어서 큰 소 한 마리를 잡아 제물로 바친다. 소의 12부위를 전체에 대신하여 쓰고, 산신제를 치른 후에 이를 부위 별로 나누는데, 이렇게 부위별로 나누는 것을 주비끼라 한다.
동해리 마을 주민들은 산신제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 산신제를 지낼 때 몇몇 금기가 있는데, 먼저 산신제를 지내는 날에는 쇳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쇳소리를 산왕인 호랑이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신제를 올리는 날에는 마을에서 기계 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 이와 함께 술이나 담배를 금하며 음식도 고기나 생선을 먹지 않고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유구읍 동해리 산신제는 그 연원이 아주 오래되었다고 한다. 약 400여 년 전, 조선 중기 선조 임금 이전부터 산신제가 모셔졌다고 전하는데, 동해리 주민들은 동해리 산신제의 연원을 고려 말기 충신들이 조선 태조 이성계를 피해 내려와 살기 시작한 데서 찾고 있다.
한편, 동해리의 산신당 터는 과거부터 와룡동(臥龍洞)으로 불리던 신성한 곳으로 그 지명이 적힌 대들보는 제당에 얹어져 있고, 동해리 산신당 근처의 나무는 신성시 여기고 있다. 동해리 산신당은 태화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동해리에서 산신제를 치르는 것은 예전에 마을 주민들이 호랑이에게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전하여진다. 그래서 동해리 주민들은 호랑이가 태화산 산신의 사자라 여기고 산신당을 짓고 산신제를 지내면서 호랑이를 기렸으며, 그 후부터 다시는 호랑이가 민가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유구읍 동해리의 산신당은 태화산(太華山)에 있는데, 산신당 안에는 산신과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도를 봉안하고 있으며, 제상에는 ‘태화산신지위(太華山神之位)’라고 쓴 위패가 놓여 있다.
[절차]
음력 시월 초사흘에 있을 동해리 산신제에 앞서 먼저 제를 올리는 유사를 가리는데, 생기복덕(生氣福德)한 마을 사람으로 부정을 타지 않는 사람을 고른다. 유사는 제관 1명, 축관 1명, 집례 1명, 공양주 1명 등 4명으로 이들 외에는 산신제를 치르는 산신당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제관으로 뽑히면, 10월 초하루부터 부정을 타지 않으려고 바깥출입을 금하고, 매일 맑은 물로 목욕하여 몸을 정갈히 한다. 또, 함부로 살생하지 않고 산제를 치르기까지 부부간 합방조차 금하였다.
또한, 산신제 제물을 마련할 때, 그 해에 가장 먼저 추수한 곡식을 팔아서 제비를 내며, 산신제에 올릴 제물로 황소를 잡을 때도 아무나 도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타지 않는 사람을 가려 뽑아 소를 잡는다. 대개 마을 사람 다섯이 소를 잡는데, 이때도 금기가 있다. 소를 잡을 때, 소가 쓰러지면서 땅에 닿은 부위는 제상에 올리지 않고, 하늘을 향한 부위만을 올린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치르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잿밥인 메는 직접 산신제 당일 제관들이 산신당에 올라가 짓는다. 이때 솥뚜껑은 열지 않고 그대로 솥을 제상에 올린다. 한편, 산신제를 올리고 나서 사흘 뒤에 동해리 주민들은 동계(洞契)를 열어 산신제과 관련된 사항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