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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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亭里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of Bansong-ri Yonghwadae Village |
이칭/별칭 | 산정리 산신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훈성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에서 음력 12월에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산정리 산제(산신제)가 언제부터 지내졌는지 그 연원은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1937년 작성된 『산음동계책(山陰洞契冊)』에 산제에 필요한 제반 물품과 경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점 등을 미루어 산제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정리 산제는 보통 음력 12월 중에 치러지는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새마을운동 등으로 여러 차례 존폐의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 산제당은 백룡리·대룡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즉 부엉재고개 끝자락에 한 평 남짓한 크기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산제당에는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는데, 신선과 호랑이 동자 두 명이 그려져 있다. 전에는 부엉재고개에 서낭당이 있었는데, 지금도 성황나무와 돌탑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낭당은 일반적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역병과 액(厄)을 막고 호환(虎患)을 막아 마을을 수호하는 기능을 하는 한편, 마을 밖으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무사한 귀가를 기원하는 공간이었다.
[절차]
산정리 산제는 산정리 이장과 마을 동계 임원진에서 주관하고 있다. 먼저 산제의 길일을 택하고 부정 타지 않은 사람을 제관(祭官)으로 선정한다. 제관은 2명, 축관은 1명을 선출하며, 축관이 없을 경우에는 이장이 대신하기도 한다. 과거에 산제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초상집에 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조상의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제일(祭日)이 지날 때까지 부부 간 동침도 금하며, 술이나 비린 음식도 삼갔다. 그리고 이발도 일주일 전에 단정히 해야 하는 등 지금보다 금기가 더 엄격했다.
근래에는 제관으로 선정되면 축관과 함께 제를 지내기 전날 찬샘골에 있는 샘에 가서 목욕재계하여 몸을 정갈히 한다. 이 샘은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산제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물은 이곳에서 길어다 쓴다. 지금도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샘 주변에 금줄을 치고 깨끗하게 청소한 뒤 가장 먼저 뜬 물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제물(祭物)은 떡·삼색실과·돼지머리 등을 준비하며, 제비(祭費)는 10여 만 원 정도 든다. 산제는 반드시 자정에 지내며, 제관과 축관·이장·동계장이 제물과 술, 마을 사람들의 소지를 가지고 올라가 제를 지낸다. 먼저 향을 올리고 잔을 올린 뒤 축문을 읽고 각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일일이 올리면 제가 끝나는데, 참여한 사람들끼리 그 자리에서 음복을 하고 내려온다. 이튿날 남은 고기와 떡을 마을 어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현황]
산정리 산제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음력 섣달에 치러진다. 산정리 산제는 마을 동계의 주관으로 치러지는데, 산정리 주민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조직인 대동계는 정식 명칭이 ‘산정리 동계’로 1946년 창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