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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신리 산신제와 거리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093
한자 上莘里山神祭-距離祭
영어의미역 Sacrificial Rite for the Mountain and the Street of Sangsin-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집필자 조훈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신제|거리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2일|음력 1월 14일|음력 10월 3일
의례장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신당/신체 산신당|탱화|장승|선돌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정월 초이틀과 시월 초사흘,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치러지는 산신제는 일 년에 2회로, 정월 초이틀과 시월 초사흘에 치러지며, 거리제는 일 년에 1회, 정월 열 나흗날에 치러진다. 상신리는 토질이 척박하고 지형이 험한 자연촌락이어서 예전부터 밭농사에 의존하여 온 곳이다. 그러한 생활환경은 평야 지역과 달리 민속 문화 자료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전승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신리 산신제는 봄과 가을에 제를 올린다 하여 춘추산제(春秋山祭)라고도 한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상신리는 자연환경이 외지고 계룡산을 낀 마을이어서, 과거에 산짐승이 가옥에 침입해 가축을 많이 잡아가고 사람을 해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안녕을 빌고자 산신제가 마련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집단 신앙으로 발전하여 마을 사람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마을 제의가 그렇듯이 상신리의 산신제도 금기가 많고, 제의도 유난히 정성을 다해 치러진다. 혹시 제의에 소홀히 하게 되면 마을에 재앙과 불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에, 제례에 대한 금기가 엄격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산신제는 거리제처럼 풍물 소리가 요란하지도 않고, 흥겨운 축제의 맛도 덜하다 할 수 있다.

상신리 거리제는 공주 지역의 다른 거리제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특성이 있다. 공주의 거리제는 촌제(村祭)·당산(堂山)·당신제(堂神祭)·거리제·거리굿이라 불린다. 거리제는 각기 주관하는 사람과 그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굿이 나타나는데, 무당이 주관하는 신(神) 굿과 마을 풍물패가 중심이 되어 풍물을 치는 두레 굿·풍물 굿, 그리고 조선시대 국가 시책으로 널리 보급된 유교식의 제례인 향제(鄕祭)로 그 유형이 나뉜다.

이러한 거리제의 유형을 따져볼 때, 상신리의 거리제는 마을 공동의 두레 굿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의 굿과 유교식의 제례가 혼합된 모습을 띠면서, 풍물 굿의 성격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신리의 거리제는 다른 거리제와 마찬가지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의 재앙이나 질병을 예방하고 퇴치하려는 목적이 있다.

상신리계룡산 북쪽 계곡 속에 있는 마을이다. 상신리는 본래 반포면 지역으로 신소골 위쪽에 있어 상신소(上莘沼), 줄여 상신(上莘)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상신리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지명과 관련해서 조선 후기에 간행된 『호구총수』에는 이 마을의 이름이 상신소(上新所), 하신소(下新所)로 기록되어 있다. 소(所)는 향소부곡으로 불리던 특수한 집단이 거주하던 곳이다. 이 일대가 유명한 도자기와 기와의 산지였다는 것과 소(所)라는 명칭을 연관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상신리 산신제의 축관 선출에 있어 과거에는 마을 서당 훈장이 글 잘 읽고 효성스런 학동을 천거했다는데, 지금은 마을의 장로(長老)가 직접 맡는다고 한다. 산신제의 제의 절차는 유교식과 불교식의 절충으로 예전에는 200배씩 다섯 차례쯤 절을 하면 첫 닭이 울고 제의를 마쳤다고 하는데, 지금은 저녁 6시경 산신당에 올라가 밤 12시경에 내려온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당은 마을 앞쪽으로 오른쪽 산등성이에 있는데, 산신당 벽에는 산신이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탱화가 걸려 있다. 이 산신도는 과거에 도둑을 맞아서 1990년대에 새로 사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산신당 내부 단은 철(凸)의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마을 입구 좌우에는 장승과 선돌이 서 있다.

[절차]

상신리 산신제는 먼저 제례 10여 일 전, 마을 회관이나 마당이 넓은 집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를 무사히 주관할 나무꾼 2명과 당주 1명, 축관 1명을 선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주를 선출하는 것인데, 당주가 모든 제물을 장만하고 제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당주는 마을 사람 중에서 산 부정과 죽은 부정을 엄격히 따지고, 생기복덕(生氣福德)한 사람으로 고른다. 나무꾼이나 축관도 그 해에 궂은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당주보다는 선발 기준이 덜 까다롭다. 이렇게 뽑힌 4명은 뽑힌 후에라도 상가에 간다거나, 상주를 만나거나, 혹은 출산이나 초상을 당하면 직위가 해제되고 다시 선발하였다.

선출된 당주의 집은 제사 3일 전에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바르고, 부정한 외부 사람의 접근을 막는다. 제물은 당주의 집에 음식을 잘 만드는 할머니를 관리로 들여, 집안 여자들이 음식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게 한다. 제사 당일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집안 여자들은 제물에 부정이 끼지 않게 입을 찹쌀 반죽으로 단단히 봉하거나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변소 출입도 금한다고 한다. 제물에 쓴 음식 등은 모두 밖에서 사는데, 상인과 제물 값을 흥정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제사에 쓰일 모든 용품은 가능한 새로 사거나 만들어 사용하는데, 이는 거리제에도 똑같이 적용한다.

제일에 당주는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한 후 망건을 쓴다. 밥만 당주 집에서 짓고 나머지는 산신당에 가지고 올라간다. 이때, 나무꾼들은 미리 화목(火木)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다른 제사와 달리 산신제에는 4명의 제관 외에는 누구도 동행할 수 없으며, 더구나 여자는 제관에 선출될 수도 없다. 제관은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그 중 축관은 선비의 옷차림을 한다. 그것은 유교식 제례 영향 때문이다.

산신당에 도착하여서는 산신당 주변을 말끔히 청소한다. 산신제의 제물로는 삼색실과·미역·다시마·튀각·산나물·메밀묵·백설기·돼지머리 등을 올리고 제주(祭酒)는 술 대신 식혜[甘酒]를 준비한다. 젓갈이 섞인 음식이나 비린 생선은 삼가고 제물로 쓰지 않는다. 과거 마을 규모가 컸을 때는 성대하게 산신제를 치렀다고 한다. 돼지머리 대신 황소와 돼지 또는 염소를 통째로 잡아서 제물로 삼았다고 하지만, 지금의 산신제 제물은 간소해졌다. 산신당 앞에 3계단에 모두 3개의 상을 차리고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과 불교식의 절충형으로 제일 당일 저녁 6시경 산신당에 올라가 12시경에 내려왔다고 한다.

상신리 거리제는 풍물 굿의 성격이 강하다. 거리제 마을의 안녕과 그 해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며, 재앙과 질병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거리제는 산신제와 마찬가지로 촌락의 회의에서 유사를 선출하며, 부정이 끼지 않은 사람을 뽑는다. 산신제와 구별되는 것은 거리제의 선발 기준이 다소 유연하며 나무꾼 대신, 풍물패를 뽑고 유사가 당주와 축관의 역할을 모두 한다는 점이다.

음력 정월 12일에 유사는 자신의 집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 흙더미를 뿌려 바깥출입을 삼간다. 산신제와 같이 될 수 있으며 제사에 쓰이는 물건은 새로 준비하고 역시 상인과 가격 흥정을 하지 않으며, 정성스런 마음으로 제를 준비한다. 음식은 아낙네들이 품앗이로 도와주며 건과·과일·돼지머리·편육·술·메 등을 장만하며, 제주(祭酒)는 산신제 때 식혜를 쓰는 것과 다르게 담은 술을 쓴다. 또, 산신제와 마찬가지로 비린 것은 제물로 올리지 않는다.

음력 정월 14일이 되면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유사의 집에 모여 아침술을 들고는 길(吉)한 방위를 가려서 장승 감으로 쓰일 재목을 구하러 나서는데, 이때 풍물패가 풍물을 치며 뒤를 따른다. 좋은 방위에서 재목을 베어 마을로 나무를 옮겨 곧 장승을 깎기 시작한다. 장승은 한 해에 남·여 하나의 장승만 세우는데, 마을 어귀 산기슭에 밤이 되기 전에 세운다. 상신리의 장승 한 쌍의 교체는 번갈아가며 장승을 세우기 때문에 2년이 걸린다.

정월 보름날 새벽 거리제의 유사는 마을 사람들과 거리제를 올리는데, 유사가 축문을 읽으면 마을 사람들은 소지를 들어 한 해의 무사태평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제의를 마치면 제물을 서로 나누어 음복하는데, 붉은 팥이나 콩이 박힌 시루떡을 먹으면 일 년 내내 잔병을 앓지 않는다고 믿어 한 조각씩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부대행사]

정월 보름날 자정이 되면 유사 집은 제물 준비로 더욱 바빠진다. 새벽 2시 정도에 풍물패가 풍물을 치며 돌아다니는데, 각 집안은 문을 열어 풍물패가 샘굿을 하게 한다. 상신리가 다른 지역과 달리 유난히 물과 연관되는 수향(水鄕)이기 때문이다. 샘굿을 해주면 집안의 평안과 풍요를 빌어줬다는 수고로 음식과 술상을 내준다. 샘굿을 모두 마치면 공주 구룡사지 당간 지주에 가서 당간주 제사를 지내고 해뜨기 전에 장승제까지 마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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