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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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鶴里-長丞祭 |
영어의미역 | Guardian Post Religious Service of Uidang-myeon Songhak-ri Deulmal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 |
집필자 | 최정숙 |
성격 | 장승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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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
의례장소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들말 |
신당/신체 | 장승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 들말에서 정월 대보름날 남, 여 장승을 세운 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조선 전기 노표(路標) 윗부분에 귀신이나 무서운 인간 얼굴을 새긴 장승이 만들어졌다. 이 노표 장승은 조선 말기에 폐지되어 전국의 도로에서 사라졌으나, 아직도 전국 곳곳에 장승배기나 장성고개란 지명들이 남아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우리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찰의 입구에 장승이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이 사찰장승은 단순한 노표가 아니라 사찰의 수호신 역할을 하였다. 비로소 장승이 노표에서 수호신으로 그 역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보니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무서운 형상의 기원은 사찰의 입구에 서 있는 천왕문의 사천왕상, 금강역사상, 인왕상 등을 모방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사찰에는 경내의 청정과 신성한 가람을 보존하기 위해 해탈문, 사천왕상, 금강역사상, 나한상 등을 배치하였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장승을 모시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불교는 정부가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탄압하는 실정이었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도적떼가 창궐하는 등 외부 침략자로부터 사찰을 보호할 방안이 더욱 절실해졌던 것이다. 그에 대한 하나의 방식으로 신앙적 차원에서 사찰 수호신인 장승을 모시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연원 및 변천]
송학리 들말 장승제는 조선시대 노표 장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 후기부터 들말에서 장승제를 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마을에 사는 노인 어른 중에는 장승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장승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날마다 출입하는 생활공간에서 만나는 소박한 장승이 어느덧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한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송학리 들말 장승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장승과는 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동편의 천하대군은 67㎝ 정도이고 지하여장군은 65㎝ 정도의 작은 크기라서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 만큼 소박한 돌장승들이다. 돌을 다듬지도 않았다. 자연의 돌을 그대로 세우고 1년에 한번 먹물로 그려 넣는데 천하 대장군은 개구쟁이 남자 아이를 닮았고 지하 여장군은 통통한 여자 아이를 연상하게 한다.
[절차]
정월 열 나흗날 새벽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장승제를 지내는데, 제의는 유교식으로 지낸다. 제관 선출, 금기 사항, 제수와 진설, 제의 절차, 경비 추렴, 제의 후 뒤풀이 등은 다른 마을의 제의 절차와 유사하다.
송학리 들말 장승제의 제관은 산신제의 경우와는 달리 선정 조건이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아서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집이 넓고, 기본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면 된다. 제비의 마련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풍장을 앞세우고 집집이 다니면서 걸립 하는데, 초상집이 있으면, 그곳에는 걸립을 하지 않고 나중에 돈으로 받는다. 제수 비용은 모두 쌀 한 가마니 정도 된다. 제물은 백설기, 수수팥떡, 삼색실과, 명태, 김, 다시마 등을 쓴다.
송학리 들말 장승제에는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는 쓰지 않으며, 메밀묵과 수수 망새기를 올린다. 메밀묵은 대체로 터가 센 곳을 누르려고 쓰는 제물인데, 이것을 하당에 바치는 것은 거리신의 기능을 보강하고 협조하기 위한 수단이다.
제사 당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장승 목을 베러 산으로 가는데, 대장군(大將軍)이나 삼살방(三煞方)이 없는 방향으로 간다. 장승 목은 소나무로 선택하며, 베기 전에 술과 북어를 놓고 절을 올린 다음 음식을 나누어 먹고 베어 온다. 베어 온 장승 목으로 남, 여 장승을 깎아 세운 후, 금줄을 드리우고 황토를 뿌린다.
이러한 장승은 해마다 세우지 않고 격년으로 세운다. 장승제 끝에 대동 소지를 올린다. 제사가 모두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음복하며 잔치를 벌인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